검찰개혁에 대한 문무일 검찰총장의 반기
검찰개혁에 대한 문무일 검찰총장의 반기
  • 최자영(전, 부산외국어대 교수)
  • 승인 2019.05.11 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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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개혁에 대한 문무일 검찰총장의 반기>

 

검찰 힘 빼려다 더 큰 검찰 만날 것이라고 하는 조선일보의 협박

문무일 검찰총장이 공수처 설치와 검경 수사조정권 문제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검찰 개혁을 둘러싼 회자되는 논의의 핵심은 공수처가 기소권을 가지면 안 되고, 또 경찰이 수사종결권을 가지면 안 된다는 것이다. 문총장 등 검찰의 기득권을 옹호하는 이 같은 입장은 국가기관의 기능을 독선적 권력의 소재에만 관심을 가질 뿐, 국가 기관들 사이의 효율적 견제와 협조의 개념을 결여하고 있다.

검찰은 경찰이 독립 수사권을 가지게 되면 큰 문제가 생기고 부정부패가 만연할 것처럼 떠든다는 점이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초록은 동색, 지금도 수사기관의 부패는 더 할 수 없이 만연하다는 생각들인데, 검찰만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 듯하다.

클럽 미성년자 출입을 무마한 대가로 경찰이 구속되었다고 해서, 경찰에게 독립 수사권을 주면 안 된다? 검찰이 권력의 시녀가 되어 수사를 잘못하고, 장자연 사건 등 특검을 통해 재수사해야 한다는 여론이 빗발치는 지금, 어떻게 검찰이 경찰을 나무랄 수가 있나?

조선일보는 검찰 힘 빼려다 더 큰 검찰 만날 것이라고 협박을 하면서, 검찰이 수사권 조정에 반발하는 것이 이유가 있다고 검찰 편을 들었다. 그 뜻은 경찰이 독립 수사권을 가지면 지금 검찰이 하는 것보다 더 부패할 테니, 지금 그데로 있는 것이 낫다는 뜻이다. “여우 피하려다 호랑이 만날 테니, 지금 검찰의 부패를 그대로 참고 있어라는 뜻이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왜 검찰과 경찰과의 권력 관계만 생각하고, 또 검찰과 공수처의 상호 권력관계만 생각하는가 하는 것이다. 또 그 권력 관계를 협조가 아닌 갈등, 대립의 관계로만 조명하는가 하는 것. 그것은 검찰이 지금까지의 부패에도 모자라서 반성함이 없고, 오직 검찰 조직이 갖는 권력의 향방에만 관심을 갖고 있다는 점을 반증한다. 국민, 시민은 검찰, 경찰, 공수처, 그 어느 것이건 부당 수사, 부패한 검찰로 인해 불이익을 당학 있어야 할 필요가 없기에 지금가지 권력을 전유해온 검찰 개혁을 강구할 권리가 있다.

수사권 혹은 수사 종결권을 지금처럼 획일적으로 한 기관 검찰에서만 전유해야 한다는 발상은 참으로 봉건적이고 권위주의적이다. 검찰이 권력의 시녀가 되어 검은 것을 희다고 하고, 기소 여부도 편의대로 왜곡해왔다는 사실을 다소간에 모르는 사람이 없다. 그런 마당에, 반성은 커녕 다시 검찰을 최종 권위자로 세우려고, 공수처법을 알맹이 없는 허깨비로 만들고, 경찰을 다시 검찰의 시녀로 만들려고 하는 문무일 총장의 의도와 발언은 획일적 권력의 폐단을 그대로 존속하게 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식민지배와 독재의 잔재로서의 권위주의적 경찰, 검찰, 법원

사실 공수처, 검찰, 경찰의 상호관계보다 더 근본적으로 반성해야 할 것이 있다. 행정부 소속의 이 수사 기관들이 잘못하면, 사법부나 입법부에서 견제를 해야 하는데, 그게 잘 안 된다. 법원도 재판을 엉망으로 하기 때문이다. 또 문제는 엉망으로 이루어지는 판결을 교정할 절차가 한국에는 마련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법관이 잘못하면 국회에서 탄핵할 수 있다고는 하나, 잘못 판결된 사건 자체와 그로 인해 개인이 입은 피해에 대한 구제 절차 자체가 없는 것이다. 법관이 잘못하면 국회에서 탄핵할 수 있다고는 하나, 말뿐이고 실제로 탄핵된 적은 한 번도 없는 것으로 본인은 알고 있다. 양승태 사법권력 농단혐의에 관련된 법관들도 국회에서 다루지 않고 있고, 법원 자체에서 유야무야 차일피일 하고 있다. 또 법원 내부에 법관 징계위원회라는 것도 자체(셀프) 감찰기구라 구색을 갖춘 형식에 불과하다.

법원이 엉망이니 검찰, 경찰도 제멋대로, 무서운 것이 없다. 오늘날 한국의 경찰신뢰도, OECD국가 중 꼴찌에서 두세 번째, 사법 신뢰도도 똑같이 OECD 국가 중 꼴찌에서 두세 번째인 것은 우연이 아니라, 바로 검찰과 법원 각각 권력의 구조적 집중에서 오는 독단에 기인 한 것이다.

검찰 조직의 전횡이 우연이 아니라 식민지배의 잔재와 맞닿아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면, 문무일 총장은 검찰 조직의 권력을 비호하는 그런 발언은 쉬 하지 못할 것이다. 만일 그런 점을 알고도 검찰이 가진 권력을 분산하는 데 반기를 드는 것이라면, 문총장은 의도적으로 식민지배는 물론 유신독재, 군부독재를 지지하고 민주주의에 반대하는 시대역행적 반동분자이거나 그 아류가 된다.

획일적 권력의 검찰조직을 비호하는 문무일 총장은 자신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 지를 돌아보고, 식민지와 독재의 잔재를 강화하는 것이 아닌지를 반성하시라. 민주주의는 권력을 분산시켜 견제와 균형을 도모함으로써만이 가능하며, 검찰 조직을 강화함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검찰 권력의 분산을 통한 견제와 균형의 지향

검찰만 아니라 공수처도 기소권을 갖고, 경찰도 수사종결권을 가짐으로써, 검찰의 독선과 독단, 하복상명의 봉건적 명령 체계를 극복할 수 있다. 민주주의는 사람의 선악, 곡직 여부와 무관하게 기관 간 권력의 견제와 균형에서 오기 때문이다. 그 권력 간 견제와 균형은 정부 기, 혹은 행정, 입법, 사법의 3권 사이뿐 아니라 지역 간에도 이루어져야 하고, 또 정부권력과 시민들 사이에서도 이루어져야 한다. 그 말은 권력은 집중되는 것이 아니라 끝없이 분산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경찰이 수사조정권을 가지고, 공수처가 기소권을 가질 때, 그나마 검찰조직이 갖는 권위주의의 바위를 향해 떨어지는 물방울 하나라도 생기게 될 것이다.

 

부실 수사 및 부당 판결의 공직자에 대한 국가의 구상권 제도 도입의 필요성

라면 몇 개 훔쳤다가 이년인지 삼년인지 징역을 선고받은 적이 있다고 한다. 이런 판결이 만의 하나라도 일리가 있는 것이라면 그것은 미래를 경계하는 뜻일 것이다. 문제는 라면 훔친 좀도둑은 다음을 경계하여 중징계를 받는 판에, 그 천 배 만 배 이상으로 도둑질을 한 권력의 공직자나 금력의 재벌은 솜방망이 처벌을 받거나 무죄가 되어 풀려난다. 그러니 이들에게는 미래를 위한 경계 같은 것이 적용되지 않는다.

경찰, 검찰이 수사를 잘못하고 판사가 판결을 잘못하면, 재심을 청구하라 하고 끝낼 일이 아니다. 그로 인해 개인이 당한 시간적, 금전적 손해를 국가는 손해 배상해야 하고, 국가가 지불한 그 배상액에 대해 국가는 수사나 판결을 내린 공직자 당사자에게 구상권을 행사해야 한다.

라면 몇 개 훔친 것은 사적인 것이지만, 공직자는 자기 것이 아닌 공적인 권력을 농단한 만큼 더 철저하게 처벌함으로써, 귀감을 삼아 미래를 경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고대 아테네와 페르시아 간에 벌어진 마라톤 전투의 영웅 밀티아데스는 훗날 아테네인으로부터 엄청난 금액의 벌금형을 선고받고, 다다넬스 해협(헬레스폰토스)으로 도주하여 그곳에서 병들어 비참하게 죽었다. 영웅도 잘못하면 민중에 의해 가차 없이 처벌 받는다.

 

민주정이 아닌 위정자 과두정의 나라 대한민국

박원순 시장이 KT임용비리와 관련하여 특검 도입의 필요성을 제안했다. 이 뿐 아니라 장자연 사건’, ‘세월호 사건등 우리가 알고 있는 굵직한사건들이 죄다 특검 도입을 필요로 한단다. 그러면 특검 도입을 안 하는 사건들은 제대로 처리가 된 거냐? 답은 아니다쪽이다. 특검을 도입하자는 제안은 검찰의 수사가 엉망이라, 검찰을 믿지 못하겠다라는 심정을 고백하는 것이다. 이런 제안 자체가 한국 검찰조직 자체를 믿지 못한다는 반증이다. 특검 도입이 안 된 사건은 수사가 미진하고 엉망이어도 그냥 넘어간다. 다 특검을 할 수가 없는 현실적 한계 때문이렸다.

검찰 조직이 하는 일을 민중(국민, 시민)이 믿을 수가 없으니, 차라리 없는 것만 못한 지경에 이르렀다. 특검이라고 해서 제대로 수사를 할지도 미지수이다. 이제 경찰, 검찰 가릴 것 없이 민중의 신뢰를 잃었고, 법원의 재판도 따로 가는 것이 아니다. 여기에 한국이 진정 민주주의 나라인가 하는 점을 반성해보게 된다.

형식적으로 투표권을 갖는다고 민주정이 되는 것이 아니다. 아테네의 민주정은 공권력의 오용, 남용을 실제로 감시하고 벌을 할 수 있는 권력을 민중이 가짐으로써 가능한 것이었다. 지금 한국에서는 불기소위임(그들을 뽑아준 민중의 뜻에 매이지 않는다)의 국회의원을 민중은 벌할 수 없고, 유신독재 때 빼앗긴 개헌발의권도 돌려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민중은 꼭두각시에 불과하다. 한국은 민주정이 아니라, 국회의원, 법관, 검찰, 경찰 등 각종 공권력의 위정자들에 의한 과두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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