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민 PD '김춘추 이야기'에 보이는 군국주의
김형민 PD '김춘추 이야기'에 보이는 군국주의
  • 최자영 (전 부산외국어대학교 교수)
  • 승인 2019.07.11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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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민(SBS PD)<딸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의 일환으로 쓰는 일련의 글들은 사뭇 감동적이다. 망각으로 사라져간 일화들을 주저리주저리 엮어서 햇빛 속으로 날렵하게 끌어내는 그의 이야기는 이른바 낡아빠진 좌우의 대립을 초월해 있는 듯하다. 그는 독재와 권위주의에 대해서도 날카로운 해부의 칼날을 들이댄다.

그런데도 그는 알게 모르게 자신이 비판하는 그 비민주적 권위주의 정권을 결과적으로 지지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풀어낼 때가 있다. 아래 이야기는 그 한 예이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하다?>

김형민의 <김춘추이야기>에는 당나라 군대를 끌어들여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삼국을 통일한 김춘추를 사뭇 긍정적인 시각으로 조명하고 있다. 그 명제는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하다.”이다.

김형민에 따르면, “당나라 연호를 쓰고 당나라 옷을 입는다고 신라가 당나라의 일부가 되는 것도 아니었고, 왕이 직접 바늘을 들고 길이길이 빛나라 우리 당나라라고 수를 놓아 바친다고 신라가 위험해지는 것도 아니었지만, 그렇게 함으로써 당나라의 군대를 움직일 수 있다면, 그래서 신라가 살아남을 수 있다면 그 이상의 승리는 없었을 테니까.“라고 한다.

김형민은 신라가 당나라에 허리를 굽혔을지언정 당나라의 꼭두각시로 전락하지 않았다고 한다. 또 모질고 기나길었던 전쟁의 승리자, 누가 뭐래도 역사의 승자는 살아남은 신라였던 것으로 의미를 부여한다. 마침내 매소성 전투와 기벌포 해전 후 당나라 세력이 완전히 물러가고 문무왕이 무기를 녹여 농기구를 만들었고 백성을 어질고 오래 살게 하였다라고 선언하던 날 저승의 김춘추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을 것이라고 김형민은 말한다.

이런 김형민 이야기의 맥락에는 한 가지 위험한 함정이 있다. 결국 삼국을 통일한 문무왕이 무기를 녹여서 농기구를 만들어 백성을 편안하게 살도록 할 것이라면 왜 하필 신라가 패권을 달성하고 난 다음이어야 하는가 하는 것이다. 왜 신라가 백제와 싸우기 전에 제각기 백성들을 편안하게 살도록 놔두면 안 되는가 하는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다.

여기서 놓쳐서 안 되는 사실은 여기에 군사력을 이용한 패권 다툼이다. 고구려와 신라, 백제와 신라, 신라와 당나라 간에는 끊임없이 패권을 잡기 위한 각축전이 벌어졌다. 그 가운데 누가 승리하든, 다음에 오는 세상은 이미 군사력에 의한 지배 권력이 군림하는 것이고, 그것은 안으로 위정자와 농민의 관계도 훼손하여 결코 평등한 것으로 돌이킬 수가 없도록 한다. 군사력에 기초한 지배 권력은 그 자체로서 비민주적인 속성을 갖기 때문이다.

김형민은 당나라의 야욕을 대동강 이북으로 몰아낸 문무왕이 무기를 녹여 농기구를 만들었고 백성을 어질고 오래 살게 하였다라고 선언했다고 하나, 그것은 그야말로 선언에 불과한 것일 뿐, 실제로 그와 같은 세상이 되었다는 것을 보증하는 것이 아니다. 군국주의에 입각한 국가에서는 권력 구조적으로 이미 운동장이 기울어져 있기 때문이다.

 

 

 <백제와 고구려가 신라를 침략했기 때문에?>

김춘추는 신라의 독자적 연호를 폐기하고, 의복까지 당나라 것으로 바꾸겠다고 약속했단다. 그래서 김춘추는 민족의 배신자로 매도되고, 단재 신채호는 사대주의의 병균을 퍼뜨렸다라고 그를 비난했다. 김형민은 김춘추를 옹호하는 입장에서 이런 비난을 어이없는 것으로 돌리면서, “천 년 뒤 민족인지 뭔지를 위해서 신라가 멸망해야 했단 말이냐?”라고 반문한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민족이 아니다. 당나라 군사력을 끌어들이려는 군국주의는 민족과는 또 다른 차원의 것이다.

심지어 외세 군사력을 끌어들인 김춘추의 군국주의를 옹호하는 김형민은 신라가 멸망하지 않기 위해 더한 일도 감행했던 사실을 든다. 진덕여왕이 당나라와 그 고종 황제를 찬양하는 시를 짓고 몸소 비단에 수를 놓아 보낸 치당태평송(致唐太平頌)’은 눈 뜨고 보기 힘든 아부의 극치라 소개하기조차 민망하다고 평하면서도, 태평송을 아들(훗날의 문무왕) 손에 들려 당나라로 보내는 김춘추의 눈빛은 결코 비굴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김형민은 김춘추를 옹호한다.

그 이유는 김춘추와 신라가 그만큼 절박했기 때문이란다. 그리고 신라가 그토록 절박했던 원인을 김형민은 바로 백제와 고구려가 신라를 침략했던 사실에서 찾았다. 신라가 당나라에 태평송을 보내던 무렵, 백제는 물론 고구려까지 나서서 신라의 30개 성을 깨뜨리고 있었다는 것이다.

김형민은 신라가 당나라 군사력을 끌어들인 사실을 정당화하고 그 원인이 신라 자체가 아니라 백제와 고구려의 침략행위에 있다고 규정한다. 이런 대목이 바로 김형민에게 군국주의 자체에 대한 반성이 결여되어 있음을 반증한다.

누가 먼저 침략을 했는가 하는 책임론을 추궁하기 전에, 이미 당나라는 물론 신라를 포함한 삼국이 군사력을 가지고 대립하고 있었고 각국이 패권을 추구하고 있는 상황 자체가 갖는 좀더 근원적인 문제에 대한 반성의식이 없는 것이다.

군사적 패권주의는 그 자체로서 사회를 폭력과 혼란으로 몰아넣게 된다. 군국주의의 핵심은 먼저 침략한 자를 찾아서 책임을 추궁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 어떤 구실을 불문하고 누가 마지막 승자가 되어 패권을 장악하는가 하는 것이다. 김형민이 영화 <황산벌>에서 인용해온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하다.”라는 명제의 승부 의식이 바로 그 자신의 패권주의 지향성을 반증한다.

 

<누가 먼저 침략했는가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이는 마치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냉전과 군사적 패권주의를 추구하는 미국과 소련 등 외세의 틈바구니에 끼여서 신음하는 현재의 한국과 유사하다. 6.25 동란에서 누가 먼저 침략을 감행했는가 하는 문제를 두고서 설왕설래 할 것이 아니라, 더 근원적으로 분단과 군사적 대립이라는 상황 자체에 대한 반성이 있어야 하겠다. 남북 간 대립이 어떻게 초래되었고 앞으로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가 하는 점 말이다. “북쪽이 먼저 침입을 했으니 동족상잔 비극의 모든 책임은 북측에 있고 남쪽에는 없다라는 말은 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백제와 고구려가 신라에 쳐들어와서 절박해진신라가 당의 군사력을 끌어들인 것이라고 정당화하기는 곤란한 것과 같다. 신라나 백제 등 그 주체가 누구인가를 막론하고 군사력에 의한 패권의 추구 자체가 사회를 폭력과 비민주적인 것으로 몰아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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