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민 PD(SBS)의 '이순신의 3 일 그의 마지막 날 '에 부쳐
김형민 PD(SBS)의 '이순신의 3 일 그의 마지막 날 '에 부쳐
  • 최자영 (전 부산외국어대학교 교수)
  • 승인 2019.07.20 23:2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밀티아데스와 알렉산드로스의 차이 -

김형민PD가 노량해전에서 전사한 이순신 장군의 안타까운 죽음을 다루었다. 감동적인 이야기인데 끝부분이 좀 거시기하다. 왜구의 막은 이순신의 공을 두고 그 의미를 두 가지로 귀결시켰기 때문이다. 하나는 위인 찬양론이고, 다른 하나는 무기와 군사력에서 일본을 앞섰던 조선의 국가 체제(시스템) 찬양론이 그러하다.

여기에 위인이란 개념이 정확하게 어떤 유형의 사람을 뜻하는지가 모호하고, 국가 시스템이란 어떤 것인가 하는 점도 문제가 된다. “이순신이 이러한 시스템을 최대한 활용하다던가 이순신의 승리는 이순신의 뛰어남만으로 이룩된 건 아니고 국가 시스템이 돌아가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할 때의 국가 시스템이란 아마도 당시 조선의 관료 조직을 두고 한 말인 듯하다.

위인에도 종류가 많다. 사실 플루타르코스의 위인전에도 여러 가지 인물이 등장한다. 페르시아 대군이 아테네를 침공했을 때 마라톤 해변에서 이들을 물리쳐서 그리스의 영웅으로 명성을 얻은 이가 밀티아데스이다. 반면, 알렉산드로스는 군대를 조직하고 무기를 만들어서 동방 페르시아 제국을 쳐들어가 멸망시켰다. 전자는 침략해오는 적을 방어했고, 후자는 침략을 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그런데 둘 다 위인에 속한다. 만일, 김형민 PD가 말하는 것처럼 위인을 기다리고 또 그 능력을 이용하기 위해 (우리가) 따먹어야하는 것이라면 어떤 종류의 위인을 가려서 할 것인지, 아니면 위인이라면 어떤 종류라도 다 괜찮은 것인지 하는 문제가 생긴다. 사실 용병을 고용하여 한때나마 세계제국을 이루었던 알렉산드로스보다는 아마추어 시민 전사를 동원하여 적을 막아낸 밀티아데스에 대한 감동이 더 크다. 밀티아데스는 침략하는 동방의 전제왕권에 저항하고 시민의 자유를 옹호했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순신의 공에 대한 감동도 이와 유사한 것이리라. 영광을 구하기 위해 남의 땅을 쳐들어간 것이 아니라 민중의 염원을 등에 지고 적을 막다가 숨을 거두었기 때문이다. 만일 이순신이 국가 시스템이 보유한 병기, 화약 등을 가지고 일본이나 어디를 쳐들어가다가 죽은 것이라면 그 죽음이 그렇게 서럽고 애달프지는 않았을 것이다. 페르시아 땅에서 죽은 알렉산드로스같이 말이다.

제승당 소장 '노량해전도'        임진왜란 최후의 대규모 해전으로 이순신이 전사한 마지막 싸움이이었다.    이순신의 유언으로 그의 죽음은 노량해전에서 승리하고 난 이후에야 알려졌다.  노량해전의 승리는 정유재란을 끝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제승당 소장 '노량해전도' 임진왜란 최후의 대규모 해전으로 이순신이 전사한 마지막 싸움이이었다. 이순신의 유언으로 그의 죽음은 노량해전에서 승리하고 난 이후에야 알려졌다. 노량해전의 승리는 정유재란을 끝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또 하나 경계해야 할 것이 있는데, 그것은 한 번 영웅은 영원한 영웅이라는 보는 무지함, 단순함이다. 마라톤의 영웅 밀티아데스는 그 후 순탄한 삶을 살지 못했다. 아테네는 물론이고 전 그리스에서 명성을 얻은 그는 어느 날 아테네 민회에 나서서 민중에게 부탁을 했다. 이유를 묻지 말고 배와 병사를 자신에게 좀 내달라는 것이었다. 민중은 밀티아데스를 믿고 환호했으므로 두말없이 그 부탁을 들어주었다.

밀티아데스는 군대를 거느리고 아테네 남단 키클라테스 제도의 한 섬인 파로스를 포위하고 배상금을 내도록 요구했다. 이유는 페르시아 전쟁 때 파로스가 페르시아 측에 항복하여 피해를 보지 않았고, 지금은 아테네가 피를 흘려 적을 물리친 대가로 자유를 누리고 있으니 그에 대한 배상금을 내놓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파로스는 만만하게 밀티아데스의 요구에 응하지 않았고, 전투가 벌어졌다. 이 전투에서 밀티아데스 자신이 화살을 맞았고 아테네 측은 패배하여 돌아왔다.

예나 지금이나 거병했다가 실패하면 경제적인 손실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아테네 민중은 밀티아데스의 더듬수에 잔뜩 화가 나서 그에게 손해배상금을 지불하도록 했다. 원정 실패에 대한 손해배상이었으므로 개인으로서는 도무지 갚기 어려운 금액이었다. 밀티아데스는 저 멀리 요즈음 다다넬스 해협이 있는 헬레스폰토스로 도주했고, 거기서 화살을 맞는 곳에 창()이 심하여 죽었다.

 

김형민은 영웅도 위인도 감나무에 매달린 감은 아니어서 그 밑에서 입벌리고 있는다고 떨어지는 것은 아니며, 결국 우리가 노력해서 따먹어야 하는 존재라고 했는데, 이 때 영웅은 이미 영웅의 자질을 갖춘 고정된 영웅의 존재를 전제로 하고 하는 말이다. 그 한때의 영웅이 다시 엉뚱하고 구차한 사업을 벌여서 민중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다는 개념이 없다. 같은 인물의 행위라 할지라도 그의 영웅적 행위와 더듬수를 가려내는 것은 민중이 판단해야 할 몫이다. 그 판단은 인물 중심이 아니라 사안별로 이루어져야 한다.

사람을 믿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질곡은 시작되게 마련이다. 가변적인 인간을 고정된 위인으로 분류하는 것 자체가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이순신이나 밀티아데스는 무엇이나 다 잘하는 만능의 완전무결한 인간이 아니라, 그때 그 자리에서 민중의 염원과 함께 하여 탄생한 위인이거나 영웅이다. 한 번 영웅이 영원한 영웅이라고 보는 것은 착시일 뿐이다.

아직도 유신독재의 주역인 박정희의 공과를 논하는 사람이 있다. 그에게 공이나 과(잘못) 중 어느 것이 더 크냐 하는 질문은 질문 자체로서 의도성과 편향성을 갖는다. 내심 그 인물됨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던지는 화두이기 때문이다. 박정희를 정당화하려는 것은 과거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 바로 현재의 음모이다. 그 음모는 개발독재의 효과로서 현재도 여전히 지배하는 사회적 불평등과 피곤한 노동자들의 삶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외면하려는 소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타당한 담론은 박정희의 공과론(功過論)이 아니라 개발독재를 통해 추진한 경제발전의 틈바구니에서 인생을 통째로 희생당한 노동자들의 삶을 지금이라도 어떻게 보상해가야 할 것인가 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한 인물의 평가보다 더 중요한 것이 사회적으로 발생한 기회비용에 대한 보완이기 때문이다.

 

민회의 중의를 모아서 도모하는 아테네의 민주정치는 인물을 믿지 않았다. 누구라도 잘하면 바로 영웅이 되지만, 못하면 그날로 바로 역적이 된다. 그리고 그가 공적으로 끼친 손해는 철저하게 배상하게 했다. 사안별로 평가를 하는 것이지 인물 별로 영웅과 영웅 아닌 자를 가리는 것이 아니다.

김형민 PD의 글은 상반된 두 가지 요소를 함께 갖는다. 민중의 삶과 애환을 미시적으로 그려내는 필치는 좌우를 가리지 않는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 거시적인 국가 조직과 그 군국주의 지향성을 간간이 드러내기 때문이다. 김형민은 임진왜란 당시 조선 국가의 각종 화력, 군사적 기술면에서도 일본군을 앞섰다고 했는데. 병기의 우세를 그렇게 단순하게만 평가하기 어려운 것이, 그 때 일본은 서양에서 전래받은 조총을 들고 와서 조선인을 쏘아죽였다. 조선에는 없던 조총, 한 알씩 장착해서 쏘던 조총 말이다.

그런데 사실 무기보다 더 중요한 것이 사람들의 항전 의식의 여부라 하겠다. 임진왜란 때 선조는 압록강까지 달아나서 여차하면 중국 땅으로 넘어갈 요량이었다. 이른바 국가 시스템의 꼭대기에 있던 위정자들에게 항전 의식이 없었다는 말이다. 저항을 한 것은 국가의 시스템이 아니라 그 국가에 녹을 먹던 관료 중의 일부와 민중, 백성들이었다. 그것을 두고 국가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한 것이라고 하기가 어렵다.

김형민은 이순신의 활약이 국가 시스템을 최대한 활용하는 데 유능했던 것이라고 하고, 그 증거로서 국가적 시스템의 안정적인 운용이 파산 상태에 이르렀던 구한말이라면 이순신이 열 명이 나왔다 한들 어쩔 수가 없을 것 같다고 결론지었다. 이런 김형민의 평가가 갖는 문제는 좀 심각하다. ‘국가 시스템이 없으면 개인은 아무리 유능하고 발버둥을 쳐도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는 전제를 깔고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김형민에게는 국가가 먼저 있고 그 다음에 위인도 있고 민중도 있는 것이 된다. 그것도 국가를 시스템으로 파악을 하고 있으니 이는 필히 관료 시스템을 말하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 같다. 또 그 관료 국가는 화기와 병기를 골고루 갖추고 난 연후에야 위상을 갖추고 작동을 하는 것이라는 논리이다. 그런 것이 없으면 제대로 된 국가가 아니라는 말이다.

이같은 김형민 PD의 사고방식에는 자유 시민들로 구성된 자유분방한 분권의 국가는 존재가치가 없는 것이 된다. 이런 국가에서는 시스템이 최소화되어 있고, 국가가 아니라 시민 각자가 병기를 소유한다. 직접민주정치의 나라로서 오늘날의 스위스가 그러하고, 고대 그리스 폴리스 사회가 그러했다.

덧붙여 김형민은 구한말이라면 이순신이 열 명이 나왔다 한들 어쩔 수가 없을 것 같다는 비관론을 전개할 뿐, 왜 구한말의 조선이 그 지경에 처하게 되었을까 하는 데 대한 반성이나 대책이 없다. 모든 원인은 국가 시스템이 아니라 모든 권력의 원천인 민중에게 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위인다운 행위인지 관료의 부패인지 스스로 평가, 비판하고 저항, 개혁을 위해 당돌하게 나설 줄을 모르는 민중, ‘끔찍한 침묵을 미덕으로 여기는 수동적 민중 때문이라는 반성 말이다. 중심은 국가가 아니라 민중이며, 국가를 국가답게 하는 모든 책임도 민중 자신에게 있다.

이 같은 반성은 질곡에 처한 오늘 한국의 현실에서 더욱 절실하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