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훈 '반일종족론'은 틀렸고, 전태일이 옳았다
이영훈 '반일종족론'은 틀렸고, 전태일이 옳았다
  • 최자영 (전 부산외국어대학교 교수)
  • 승인 2019.08.16 23:47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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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 징용, 위안부 성노예 문제는 한일 종족간이 아니라 식민지배

-자본가 대() 피지배-노동자 간 갈등이다

이영훈이 취재 온 문화방송’ MBC 기자를 폭행해서 말썽이 되었다. 기자가 든 마이크를 집어 던지고 손찌검까지 했다는 것이다. 폭행 전말의 사정은 잘 알지 못해도 양측의 입장에 차이가 있었던 것은 확실하다. 이영훈은 일본 식민지 시대가 한국을 근대화하는 데 공헌했다는 식민지 근대화론을 주장하는 우익(뉴라이트)의 대표 가운데 한 사람인데, 기자는 그렇지 않았으므로 그런 일이 생긴 것이다.

 

이영훈은 반일 종족주의론을 들고 나왔다. 이것은 한국 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대해 일본의 경제 보복이 가해지고, 이어서 한국 민중의 반일 감정이 고조된 가운데서 나온 것이다. 그는 많은 한국 민중의 정서와는 정반대로 민중의 반일 감정을 종족주의로 매도하고 나섰다. 또 일제시대 강제징용은 없었으며 위안부 성노예화도 없었던 것으로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사실 자체를 부정하고, 일제가 쌀을 수탈해간 것이 아니라우리가 일본에 쌀을 수출한 것이라 주장한다.

이영훈이 범한 첫 번째 오류는 강제 동원사실은 없었다고 하고, 또 그런 사실의 부정을 강제징용이나 위안부 성노예의 존재 자체까지 없었던 것으로 확대 해석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양자는 같은 것이 아니다. 동원을 어떤 식으로 했든, 그와는 무관하게 강제징용과 위안부 성노예는 있을 수 있다.

광산이나 군대에 노동자나 위안부로 갈 때 어떤 이는 돈을 벌 수 있다는 꾀임에 빠져서 반쯤은 자의적 선택에 의해, 또 어떤 이는 어쩔 수 없이 강제로 끌려가기도 했을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가게 되었는가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있다. 그것은 가고 난 다음 열악한 생존 조건을 보고는 더 원하지 않을 때 자유롭게 떠날 수가 있었는가 하는 점이다. 고향으로 다시 돌아오고 싶어도 올 수가 없는 상황에서 억류된 것이라면, 강제 동원의 개념이 적중한다. 광산노동자도 위안부도 다 마찬가지로 학도병과 같았다. 목숨을 걸고 몰래 도주하다가 다시 붙들려 들어가 죽임을 당하거나, 구사(九死)일생 요행으로 살아 돌아온 이 빼놓고는 말이다.

이영훈이 범한 두 번째 오류는 강제징용, 위안부 성노예화에 대한 한국 민중의 비난을 반일 종족주의의 산물로 규정하고 나선 것이다. 그런데, 이영훈의 주장과는 달리, 강제 징용, 위안부 성노예화 등이 사실이나 그에 대한 비난은 종족 간의 갈등과 무관하다는 점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강제징용이나 위안부 성노예가 실제로 있었다고 해도 일본인과 한국인 민초가 서로 대립해야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당시 일본인들이 예외없이 일본 군국주의를 적극 지지한 것도 아니었고, 일본 군국주의 정부가 무엇을 하는지조차 몰랐던 민초들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한국이나 일본이나 어디에나 민초들은 있게 마련이다. 지금도 일본 가톨릭 <정의와 평화협의>일본 정부의 식민지 지배의 책임을 반성하라고 촉구하는 담화문을 발표하고, ‘한일관계가 화해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 문제는 종족 간 갈등 개념으로 접근할 수가 없다.

강제 징용, 위안부 성노예화의 발생은 한 종족이 다른 종족을 상대로 해서 벌인 사업이 아니다. 오히려 일본이든 누구든 그 주체를 가리지 않고 군국주의 침략을 감행하는 정권과 그 전쟁의 뒷돈을 대는 자본이 그 책임을 져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거기에 종족갈등의 개념은 개입할 여지가 없다.

한국 민중이 일제하의 강제 징용과 위안부 성노예 존재를 비난한 것이 종족 간 갈등이 아닌 것이 확실한 이유가 또 있다. 이런 열악한 노동 혹은 삶의 조건이 일제시대 일본인에 의해서만 강요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1970년대 전태일의 분신은 바로 열악한 노동조건의 상징이다. 그것은 일제 치하가 아니라 한국의 제3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 당시 박정희 정권 하였다.

 

비인간적 노동과 삶의 조건은 일본인이 물러간 다음에도 개선되지 않았고, 일제시대 독립운동가를 압박하고 처형한 일본인만큼 혹은 그보다 더한 집단 학살이 한국 국적인에 의해서 한국인 민중에게 가해졌다. 지금도 경산 코발트 광산에는 이름도 모를 수많은 주검들이 웅크리고 있다고 한다. 노무현 정권 때 이곳에서 진행되던 시신 발굴 작업이 이명박 정권 들어서 중단 상태에 있다고 한다.

노동자의 희생은 해방된 지 4반세기가 지난 1970년에도 이어졌다. ‘일요일은 휴일이라는 근로(노동)기준법이 버젓이 있는데도 죽은 법이 되어 지켜지지 않았다. ‘일요일은 휴일이 아니라 한 달에 한 번억지로 주어지는 휴일에 피폐한 청계천 피복 노동자들의 현실에 전태일은 절망했다. 아무 쓸모없이 있으나마나한 <근로기준법의 화형식>을 개최하려고 하다가 정부 경찰 공권력에 의해 저지당하여 무산되자, 전태일은 온몸에 기름을 덮어쓰고 스스로 분신의 길을 택했다.

언론도 하나같이 소름 끼치는 침묵을 지켰고, 이름만 근로감독청이었던 곳의 관료들도 본분을 외면하고 노동자들을 농락하던 그때 말이다, 그리고 묻힐 뻔한 전태일의 분신은 조영래 변호사의 <전태일 평전>을 통해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다.

청계천 피복노동자들을 보고 너희는 제 발로 돈을 벌려고 걸어 들어왔으니 너희에게 열악한 노동조건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고 일요일 같은 것도 없다라고 말을 할 수는 없듯이, 강제 징용자나 위안부 성노예를 보고 너희는 제 발로 돈을 벌려고 왔으니 노동조건 같은 것은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고 돌아갈 자유도 없다라는 논리는 성립되지 않는다.

일제하에서 돈 벌겠다고 제 발로 갔든 강제로 끌려갔든 무관하게 노동력을 착취당하고 돌아오고 싶어도 돌아올 수 없었던 이들은 강제 징용당한 것이 맞고, 위안부 성노예가 틀림없다. 그뿐 아니다. 명색이 해방이 되고 전쟁이 끝났으나, 여전히 청계천 피복 노동자들은 강제 징용 노동자에 준하는 열악한 환경에 시달렸다. 상황은 달랐으나 노동력의 착취라는 점에서 본다면, 일제시대나 개발 독재 시대나 본질적으로 차이가 없다. 다만 일제 때 징용된 자들과 위안부 성노예들에게는 전태일도 없었고, 조영래도 없어서 그 비인간적인 열악함이 널리 알려질 기회가 없었고 대개는 묻혀버렸던 것이 차이점이다.

노동자의 착취에는 일본인 한국인 간 차이가 있을 수 없다. 지금도 여기저기 외세와 자본에 빌붙어서 권력을 장악하고 노동자의 입을 막고 억압하는 한국인 자본가 사용자가 없지 않기 때문이다. 그 한국인 자본은 롯데의 경우에서 보듯이 일본인 자본과 전혀 무관한 것은 아닌 것으로 종종 드러나기도 한다. 한국 자본이 일본 자본과 반드시 대립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뜻이다.

그래서 이영훈은 틀렸다. 이영훈이 반일 종족주의로 규정하고 매도한 것이 실제로 그 속을 들여다보면 종족 간 대립이란 실체가 없다. 일본 제국주의하에서 제 몫을 찾지 못하고 희생당한 한국인 노동자들이 있을 뿐이며, 일본이 쫒겨 간 후 전태일이 분신하던 1970년과 같이 지금 한국에서도 그런 노동자가 없다고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영훈의 강제 징용과 위안부 성노예 존재의 부정은 과거가 아니라 바로 지금 이곳의 노동자를 외면하고 자본의 논리를 비호하는 수구 보수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이영훈의 반일종족주의의 주장도 멀리 일본 민족이나 일제시대를 미화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현재 한국의 자본, 사용자의 이익을 옹호하는 것이다.

그가 강제노동이 없었고 위안부는 돈 벌려고 간 것이고 그런 매춘의 역사는 비일비재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식민지배뿐 아니라 지금도 진행되고 있는 자본주의에 의한 노동자 착취를 시장경제라는 미명하에 정당화하려는 음모를 내포한 것이다. 전태일이 연민하고 자신의 신체를 불사르면서 항거했던 그 노동 착취의 역사는 일본 제국주의 지배뿐 아니라 친미 이승만 독재, 밑도 끝도 없이 황당한 박정희 유신독재, 군부독재 등을 통해 줄기차게 이어져 내려오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한국에 대한 아베의 수출규제 정책, 미국의 군사방위금 증액 요구’, 혹은 무기 장사등을 소리높여 규탄하는 민중들은 이영훈의 반일종족주의론을 반면교사로 삼을 수가 있다. 외세의 침략과 간섭에 대한 항거가 일본인이나 미국인 민초들에 대한 미움으로 빠져들어 가지 않도록 경계하고, 배타적 종족주의로 흘러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오히려 경계해야 하는 것은 외세 타도의 함성 뒤에 숨은 채 드러나지 않은 이면에서 외세와 다소간 동업 관계에 있으며 노동자의 삶을 외면하는 한국인 위정자, 공직자, 혹은 자본가의 존재이다. 적은 언제나 우리 주변에 있고, 주변의 적을 간과한 채 먼 곳의 적을 척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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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명식 2019-08-20 12:19:46
적폐청산 국가개혁
종일종미 매국노들
처단하자 타도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