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 제12조 3항, 제16조 검사의 독점적 영장청구권 규정은 사라져야 한다
헌법 제12조 3항, 제16조 검사의 독점적 영장청구권 규정은 사라져야 한다
  • 최자영(전 부산외국어대 교수)
  • 승인 2019.09.11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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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법무부장관에게 거는 기대 -|

한국의 기소편의주의와 독일의 기소법정주의 하의

기소독점권은 그 내용이 다르다.

지금 한국에서 연출되는 일련의 사태는 검찰조직과 비검찰의 싸움이 아니다. 한편에 검찰의 철옹벽같은 권력을 옹호하는 독재의 아류, 다른 한편에 그것을 조금이라도 깨고자 하는 사람들 간의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조국(신임 법무장관)
조국(신임 법무장관)

 

기소독점권, 영장청구권 독점 등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는 한국의 검찰은 일본 식민지 잔재, 독재권력의 잔재로써 사법, 입법 권력은 물론 하극상의 행정부 권력도 좌지우지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고 있다.

최근 SNS(사회네트워크망)에 한국 검찰과 다른 나라 검찰의 기능을 비교한 도표 두 개가 돌아다닌다. 여기에 기소독점권, 영장청구독점권, 기소편의주의 같은 항목들이 있다.

 

-표1-
-표1-

 

1><2>보다 더 많은 항목을 보여주고 있는데, 한국 검찰은 모든 항목에서 동그라미이다. 특히 위에서 검찰영장청구권을 헌법에 규정하고 있는 나라로서는 세계에서 유일하다.

 

-표2-
-표2-

 

<2>는 항목들이 더 적은 가운데, 검찰개혁의 핵심 과제인 기소독점권이 제일 위에 두면서 독일 검찰도 기소독점권을 가진 것으로 공표를 쳤다. <2>만 들여다보면 ! 독일 검사도 기소독점권을 가지고 있네. 우리하고 똑같네라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부지중에 한국 검찰이 가지고 있는 구조적 모순에 둔감해질 수도 있다.

그런데 <1>에는 나오는데 <2>에 안 나오는 사실 중에 검찰의 영장청구 독점권이 헌법에 기재된 사실 여부, 기소편의주의, 기소독점주의가 있다. 영장청구 독점권을 헌법에 명시하고 있는 나라가 한국밖에 없다는 사실, 한국은 기소편의주의이나 독일은 기소법정주의로 차이가 있다는 사실 말이다. 바로 이 기소법정주의와 기소편의주의의 차이점이 한국과 독일의 기소독점권의 기능을 천양지차로 만든다는 사실을 밝히려 한다. 세상 어디에도 없는 검사의 영창청구 독점권의 헌법상 명시와 독일에는 없는 한국의 기소편의주의가 한국의 검사를 무소불위의 변태적 권력을 행사하는 괴물로 키워왔음을 논하는 것이다.

<2>는 배경이 되는 다른 제도적 환경을 다 무시한 채, ‘검사의 기소독점권이라는 형식만 가지고 한국과 독일이 같은 것처럼 단순비교 하고 있다. 마치 독일의 검사가 한국의 검사와 같은 권력을 가진 것으로 왜곡하려는 의도를 가졌거나, 적어도 보는 사람이 그렇게 곡해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헌법 제123항 및 제16조 검사의 영장신청 독점권이 검찰조직을

무소불위 권력의 괴물로 만들었다.

한국 헌법 제123, 16조에는 검사의 신청에 의하여법관이 영장을 발부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헌법에 영장청구권을 검사에게 전속시키고 있는 것은 한국이 유일하다. 다른 나라는 영장 청구권자를 특별히 규정하고 있지 않다. 영장청구권자를 헌법에 명시함으로써 한국의 영장제도는 민초들의 기본권을 보호하려는 본래 의미의 영장주의를 이탈하게 되었다. ‘수사기관의 강제처분은 법관에 의하여 사전에 심사를 받아야 한다는 영장주의 본질에 입각하여, 현행 헌법에 규정된 검사의 영장청구권조항은 헌법에서 삭제되어야 한다.

검사가 영장청구권을 독점하게 하는 헌법상의 규정은 검사에게 권력을 집중하게 하는 핵심적인 법적 기제이다. 검찰은 통제 불가능의 권력기관으로서 일제 식민지배 시기같이 국민에게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고, 수많은 경찰을 검사에게 종속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증거를 적시에 수집하기 위해서 압수, 수색, 검증 등 대물적 강제수사가 절대적으로 필요한데, 경찰이 법관에게서 영장을 발부받기 위해서는 검사를 경유해야 하며, 검사가 영장신청을 기각하면 경찰의 수사는 중단되고 만다. 특히 수사 대상이 검사 혹은 검찰조직과 이해관계가 걸린 경우에 경찰관의 영장신청이 검사에 의해 기각되는 일이 발생하며, 수사가 미진한 상태에서 검사가 수사 사건의 송치를 명하여 사건이 검찰의 수중으로 넘어가기도 한다.

검사의 영장청구권 독점은 경찰 수사의 발목을 잡았고, 이런 비민주적 독재체제는 검찰 뿐 아니라 경찰조직 자체의 관성과 부패를 조장하는 데도 기여했고, 급기야 사법권력 전반을 관성과 부패의 나락으로 몰아넣게 되었다. 지금은 검찰 개혁 없이는 민주주의도 없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검사 영장청구 독점의 헌법조항을 폐지하지 않고서는 어떠한 검찰개혁도, 형사사법체제의 개혁도, 검찰조직의 민주적 개혁도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한국 검찰은 행정기관이나 독일의 검찰청은 준사법기관으로서

법무부 소속이다

한국의 검사는 행정기관이기 때문에 독립적으로 직무를 수행하지 못하다. 검사의 지위를 공익의 대표자라고 규정한다면 그것은 수사 및 소추기관으로서의 직무에 관한 것일 뿐, 검사는 원천적으로 법 선언으로서의 종국적인 법적 판단을 할 수 없다.

그러나 검사를 사법기관 혹은 준사법기관으로 보는 견해는 독일에서 찾아볼 수 있다. 독일연방헌법재판소에서 만들어낸 준사법기관이라는 용어는 검사의 기소를 의무화하고 있는 기소법정주의에 그 근거를 두고 있다. 사법이란 상관의 명령으로부터 자유로울 뿐 아니라 재량행위도 허용되지 않고, 오직 헌법과 법률에만 구속됨을 그 본질로 하는 데, 기소법정주의가 검사의 자의적 재량행위 및 검사동일체 원칙에 따른 상관의 직무 명령에 대한 견제장치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검찰 조직은 성격상 행정기관이지만, 독일 검찰은 기소법정주의에 의해 부과되는 임무의 관점에서 볼 때 독립된 사법기관이 된다. 따라서 독일 검찰은 단순히 자신이 원하는 증거들만 수집해야 하는 당사자가 아니라, 객관적 판단을 추구하는 ()사법기관으로서 직권주의(Instuktionsmaxim)에 입각하여 피의자에게 유리한 사실도 수사해야 한다.

독일 검찰청은 조직 자체가 한국과 다르다. 독일에서는 별도의 검찰청법이 아니라 법원조직법에 검찰의 조직과 임무 등을 규정하고 있다. 검찰청을 각급 법원 관할 내에 설치한다. 연방대법원에 연방검찰청, ()고등법언에는 주고등검찰청, 지방법원에 지방검찰청, 구검찰청 등으로 조직되어 있다. 법원조직과 검찰청조직은 같이 연방 혹은 각 주 정부 법무부 소속이다. 이런 점은 프랑스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럼에도 검찰청은 법원으로부터 독립하여 사무를 처리하고, 계층구조로 구성되어, 각 검찰청의 장은 관할구역 내에 있는 검사들에게 지시 명령한다. 독일의 검찰은 일종의 사법기관으로서 형사절차상의 소추권을 행사한다.

반면, 대통령을 수반으로 하는 행정부(법무부의 외청인 검찰청)에 소속하는 한국 검사의 권력은 본질적으로 행정 권력일 수밖에 없다. 전적으로 행정부에 소속한 한국 검사는 검사동일체의 원칙에 따른 상명하복 관계에 놓여있다. 검찰청법 제8조는 법무부장관은 검찰사무의 최고 감독자로서 일반적으로 검사를 지휘 감독하고, 구체적 사건에 대하여는 검찰총장만을 지휘 감독한다고 규정되어 있다. 검사는 비록 단독 관청이지만, 소속 상급자의 지휘 감독에 따라야 하는 법적 의무를 부담하며(검찰청법 제7), 검찰총장, 각급 검찰청의 검사장 및 지청장은 검사 직무의 위임 이전권 및 승계권을 가지기 때문에 개별검사는 직무상 독립성을 가질 수 없다. 행정조직에 소속되어 있는 독립적일 수가 없고 상관의 지시를 받들어야 하는 검찰권은 형사절차에서 법원에 법적 판단을 요청하는 기능에 그칠 뿐이다.

이들이 재량에 따른 기소편의주의에 입각하여 스스로 막강한 재량권을 행사하며, 편견, 권력, 뇌물 그 어느 것이든 기소 여부의 결정에 영향을 미치게 되고, 그러면 유죄의 증거를 가능한 한 과장 혹은 은폐하거나 무죄의 증거를 과장, 혹은 축소하기도 한다. 자의적으로 기소여부를 결정하는 편의주의의 한국의 경찰과 검찰은 승진을 위한 업적 쌓기로 억지로 범죄자를 양산하는 기막히는 풍속도를 연출해왔다.

한국 검사의 지위는 사법의 개념과 사법작용의 특성에 어울리지 않으며, 독립된 신분으로 독자적으로 법 선언을 하는 법관과 다르다. 사법작용이란 분쟁해결을 통해서 법질서를 유지하고 법적 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보수적, 현상유지적 작용(사법의 보수성)라는 점을 생각해볼 때, 한국의 검찰권의 능동성은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사법작용과 상반된 면을 갖는다. 사법작용은 구체적인 법적 분쟁이 발생한 경우에 당사자로부터 소()가 제기되어야만 비로소 발동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 사법작용은 법의 의미를 중립적 입장에서 인식하는 작용인 것과 달리, 검사는 행정부에 속해있어서 중립성을 확보하기 어렵다. 상관의 지시권에 한계를 설정하는 기소법정주의를 채택하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한국 검사의 준사법기관적 지위에 대한 근거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서 검사가 영장청구권을 독점할 수 있는 자격도 없어지게 되는 것이다.

검사의 불기소처분은 사법적 해결의 기능이 있다고 주장하기도 하나, 그도 법관 혹은 법원의 법 선언작용인 것은 아니다. 불기소처분은 종국적 처분이 아니며, 불기소처분을 하였더라도 공소제기의 필요가 있을 때는 언제든지 불기소처분을 취소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검사의 불기소처분에 대해 불복하여 법원에 제기하는 재정(裁定) 절차도 원천적으로 검사의 행정 처분에 대한 타당성 여부를 결정하는 것에 불과하므로, 그 법원의 결정도 분쟁사건 자체에 관련한 법선언 작용으로 자리매김하는 것이 아니다.

 

검사는 공익의 대표자도 아니고 경찰과 특별히 다른 지위에 있는 것도 아니다.

검찰청법 제4조에 검사는 공익의 대표자라고 규정되어 있으나, 법규범은 현실과 반드시 일치하는 것이 아니다. 형사소송법 제312조 제1항 단서 위헌소원 사건(1995.6.29. 92헌바45)에서 반대의견을 낸 헌법재판소 재판관 김진우, 조승형은 검사는 어디까지나 피고인을 범죄자라고 지목하여 그에 대한 처벌을 요구하는 소추기관의 지위에 있을 뿐이며, 공익의 대표자로서 진실과 법령에 따라 수행할 의무가 부여되어 있는 것도 수사 및 소추기관으로서의 직무일 뿐이다. 검사가 공익의 대표자라고 하는 것은 국가와 국민의 긴장관계에서 국가를 대표하여 제3의 중립적 기관인 법관에게 심판을 요구하는 지위에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설시했다.

그래서 검사에게만 전속적으로 영장청구권을 귀속시킬 정도로 검사가 사법경찰관과 구별된다고 보기 어렵다.

 

검찰은 정치적 권력에 종속될 위험뿐 아니라 스스로 정치에 개입하는 월권을 범하기도 한다.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 인사의 독립성을 보장하고자 함은 검찰의 정치권력에 대한 종속성을 타파하려는 것이지만 거꾸로 검찰이 정치를 지배하려고 월권하는 부작용도 있다. 이것은 검찰권이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속성을 가진 데서 나온다. 실로 한국 검찰은 정치권의 영향에서 독립적이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검찰이 정치에 관리하고자 하는 경향을 드러내기도 한다.

검찰은 정치권을 만나면 정치권을 위해, 스폰서를 만나면 스폰서를 위해 권한을 행사했다. 통제받지 않는 검찰의 권한이 국가의 다른 부분을 검찰에 종속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우병우 사태가 그 한 예이다. 지금 조국 법무주장관 후보 지명 이후 벌어진 일련이 사태도 검찰의 정치화에 대한 세간의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검사의 영장청구 및 기소독점권, 기소편의주의의 한국 검사는 자의적으로 기소 여부를 결정함으로써 기본권을 유린하곤 한다. 검사만 막가는 것이 아니고, 법원의 판사도 그에 준한다. 양승태 사법농단의혹 사건 등에서 압수수색영장 발부에 그렇게도 인색하던 법원이 이번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 지명 관련 사건에서는 주민등록증 발급하듯이 하루밤 사이에 수십 건의 영장을 발부해주었다. 검사, 판사 할 것 없이 한국 사법부 조직 전반에 만연한 권력 추종적 경향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대목이다.

 

검사의 독점적 영장청구권은 민주가 아니라 박정희 독재정권에 의해 탄생하고 기생했다.

검사의 독점적 영장신청권을 헌법사항으로 규정하고 있는 것은 일제강점기 식민지 형사사법제도와 미군정기를 거치면서 정통성을 상실한 정부권력과 사회세력에 의해 건국헌법은 형해화하고 무참히 짓밟혀 국민의 인신보호가 극히 미흡하다는 반성적 고려 때문이라고 하는 견해가 있으나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또 헌법재판소(헌재 1997.3.27. 96헌바28, 31, 32(병합)에 따르면, “5차 개정헌법이 영장의 발부에 관해 검찰관의 신청이라는 요건을 규정한 취지는 검찰의 다른 수사기관에 대한 수사지휘권을 확립시켜 종래 빈번히 야기되었던 검사 아닌 다른 수사기관의 영장신청에서 오는 인권유린의 폐해를 방지하고자 함에 있다고 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헌법재판소의 이런 논리도 비약일 뿐으로서, 실제로 것의 독점적 영장청구권은 독재정권에 의해 탄생했다.

1948년 제정헌법 제9조에 영장청구권자를 모든 수사기관으로 전제하고 있을 뿐, 검사의 독점적 영장청구권을 규정하고 있지 않다. 형사소송법이 처음으로 제정(1954.9.23. 법률 제341)될 당시에도 검사 또는 사법경찰관에게 영장신청권을 주었으며, 4.19혁명 이후의 제2차 헌법개졍에서도 그런 조항은 없었다. 그러다가 1962.12.26.일 공포된 제5차 헌법개정에서 검찰관에 의한 영장청구권 조항이 헌법에 명시했는데, 그것은 5.16군사정변으로 인한 혼란의 시기였고, 국가재건최고회의가 국회를 대신하여 입법권을 행사할 때였다. ‘검찰관에 의한 영장청구권 조항은 그 전 해인 1961.9.1.일 개정 형사소송법에서 처음 나타났는데 이것도 정상적인 국회에 의한 개정이 아니고, 국가재건최고회의가 개정한 것이었다.

 

검찰뿐 아니라 다른 권력기관들도 제왕같이 상호 견제받지 않고 제각기 도생하고 있다.

현재 한국 정치의 문제는 검찰조직만 독주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권력 기관은 상호 균형과 견제의 기능을 벗어나 있다. 국회, 법원, 행정, 헌법재판소, 국정원까지 각 기관이 따로 놀고 있고, 견제받지 않은 권력으로서 제왕같이 군림하고 있다.

사법권력의 경우 검찰은 물론, 아래로는 경찰, 위로는 법원, 헌법재판소까지 일사불란하게 사법권력을 남용하고 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각 기관이 서로 견제하는 체제가 마련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견제와 균형의 민주적 원리는 실종된 채, 서로 눈감아주고 나누어먹기로 일관하고 있으며, 그런 가운데 민초들은 기본권을 침해당하고 권력에 의해 농락당하고 있다.

그 한 예가 헌법재판소법 제68조 제1항에 재판소원 금지조항이다. 헌법재판소는 잘못된 재판에 대한 견제 기능을 스스로 포기했다. 그럼에도 현재의 헌법재판소가 탄생하던 1987년 만 해도 검사의 불기소처분에 불복하여 고둥법원에 제기하던 재정신청은 헌법소원의 대상이었다. 그런데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2007년 개정 형사소송법에서는 급기야 재정신청까지 헌법재판소의 소원대상에서 제외했다. 이 재정 절차를 거친 것을 재판받은 것으로 의제한다는 것이다. 개악이다. 헌법재판소 견제의 굴레를 벗어난 검사의 기소편의주의는 그 재량권을 잣대도 없는 무법천지를 연출했고, 그 결과가 오늘의 사법적폐를 일상화하는 데 치명적으로 기여했다.

국회도 사법권력의 독재화에 한몫을 톡톡히 하고 있다. 박정희의 개발독재 권력에 의해 제정된 검사의 영창청구권 독점권을 여전히 존속시키면서 폐기하지 않는 것은 민중의 기본권이 검찰 권력에 의해 침해당하는 사실을 알면서도 묵인하는 것이다. 명색이 대의제라고 하는 국회는 민중의 뜻을 대의하지 않아도 된다고 공식 선언하고, 고삐풀린 말, 브레이크 고장난 자동차마냥 갈팡질팡 치닫고 있다.

 

권력의 지역적 분산, 민관 협치로 사법개혁은 이루어져야 한다.

독일의 사법권력의 민주화는 기소법정주의를 통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여기에 독일 법원 및 검찰청의 권력구조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그 권력이 중앙집권이 아니라 각 지방으로 독립 분산되어 있다. 각 지방마다 대법원이 따로 있고, 또 검찰청은 대법원, 고등법원 등으로 각기 독립되어 있다. 행정은 물론 인사도 각 지역 단위로 독자적으로 이루어지고 중앙에서 일괄적으로 통제하는 것이 아니다. 분권에 입각한 독일의 사법권력 구조는 법원과 검찰청을 가리지 않고 중앙 통제형인 한국과 차이가 있다. 집중되고 통제받지 않은 권력은 부패하기 마련이다.

검찰개혁은 검찰과 경찰 간 수사권 조정만 가지고서는 안 된다. 검찰과 경찰은 물론이고 판사, 국회의원 등 정부 관료 및 위정자들이 전반적으로 그 나물에 그 밥 같은 데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위정자 관료의 권력을 견제할 수 있는 또 다른 권력의 주체로서 민중이 개입할 때가 되었다. 이것은 반세기를 이어온 박정희식 개발독재의 통치형태, 권력의 집중을 통한 독재체제를 수정하는 것과 궤도를 같이한다.

박정희는 건국헌법 이래 전례 없을 뿐 아니라 세상 어떤 나라에도 없는 검사의 영장청구독점권을 헌법에 명시했다. 거꾸로 건국헌법 이래 명시되었던 국민개헌발안권을 민초들에게서 빼앗아가서 없애 버렸다. 그런데 더 기 막히는 현실은 박정희 유신독재가 마감되고 전두환 군부 독재도 사라지고 1987년 새헌법이 제정되어 오늘날에 이르렀으나, 여전히 독재체제의 입법이 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금 국회도 검찰도 그 어떤 기관도 원래대로 되돌려놓을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 유신 독재정권의 아바타(화신)’ 같다. 자한당은 물론 더불어민주당도 그런 점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

유신독재 때 빼앗긴 국민개헌발안권 하나만이라도 민초에게 돌려달라고 원포인트(한 가지만) 개헌아우성을 쳐도 입법의 국회는 마이동풍 들은 척도 않고 눈썹도 까딱하지 않고 있다. 민초들이 더 열심히 나서야 독재의 아바타들이 마침내 귀를 열지도 모른다. 민초는 모든 권력의 원천으로서 우선하며 위정자 관료는 민초의 종복이다. 그러나 주인의 권리는 가만히 있어서 그냥 오는 것이 아니다.

헌법에 명시된 검사의 영장청구 독점권을 없애고 국민개헌발의권을 되찾음으로써만이 아직도 미적거리고 우리 곁을 떠나지 않는 유신독재의 망령은 비로소 떨쳐버릴 수 있다. 권력의 집중을 통해 각 기관에 스며들어있는 독재의 망령은 걷어내야 한다. 민초들이 하나같이 분연히 깨치고 일어나 공직자를 감찰하고 비리 공직자를 소환할 수 있는 국민소환제를 제도화하고, 민중에 의한 사립탐정을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 사립탐정을 통해 경찰이나 검사의 수사인력 부족을 메꾸면서 민중과 관료 양측이 수사와 비리척결에 협조하는 민관협치(거버넌스)의 상용화를 구현하도록 해야 한다.

한국은 아주 특이한 나라다. 세상에 어디에도 없는 검사의 영장청구 독점권을 한국 헌법에 명시하고 있는가 하면, OECD국가 증에서 유일하게 사립탐정제도를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은 민중 자체의 권리와 동력을 인정하지 않고 관료 일변도의 권위주의 행정, 입법, 사법체제를 여전히 유지하고 있는 데서 기인한다. 그리고 그런 풍토가 지금까지도 만연하게 된 주요 원인은 목숨이 아까워 겁내고 저항하지 못한 우리 자신에게 있다.

[이 글은 배병철, 박호정, “헌법상 검사의 영장청구권 규정에 대한 비판적 검토”, 유럽헌법연구 26(2018), 151-191쪽을 일부 참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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