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열하고 비도덕적이고 포용력 없는 못된 놈도 눈치보고 잘하도록 만드는 견제의 권력구조가 필요하다!
비열하고 비도덕적이고 포용력 없는 못된 놈도 눈치보고 잘하도록 만드는 견제의 권력구조가 필요하다!
  • 최자영 (전 부산외국어대학교 교수)
  • 승인 2019.10.18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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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진욱 교수 ‘포용의 정치론’에 대한 반론 -
신진욱 중앙대 교수
신진욱 중앙대 교수

 

신진욱 중앙대 교수가 '조국, 그 이후'란 제목으로 <한겨레 신문>에 연속 기고를 한단다. 그 첫 번째 표제가' <복합 갈등' 포용의 정치>이다. 조국 사태의 본질을 ‘공정성과 공정성이 부딪친 시간’으로 파악하고, 또 현 정부에 대한 평가를 도덕적 잣대로 재려 한다. “나라다운 나라 만들겠다던 정권 왜 더 높은 도덕적 잣대로 대응 못했나”하는 부제가 그러하다.

 

신진욱 교수의 도덕론을 비판하는 이 글의 결론을 미리 소개한다면, 신교수의 주장은 연목구어, 초점이 빗나간 것, 나무에 올라가서 물고기를 구하는 것과 같다. ‘조국 사태’의 본질은 도덕성에서 구할 것이 아니라, 친일파, 독재정권을 통해 해묵은 권력의 부당한 편재, 권력집중을 옹호하는 쪽과 타파하려는 쪽 사이의 갈등으로 파악하는 것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신교수는 시종 ‘도덕성’을 논한다. 여권이 조국 사태 초기부터 문제의 핵심을 잘못 짚었다고 하면서, 도덕성이 정당성을 침식하는 상황에서 불법이 아니라고만 맞섰던 것이 잘못이라고 나무랜다. 또 한편으로 조국 장관에 대해서는 평등, 정의, 공정의 가치를 주창해온 그가, 실은 너무 많이 가졌고 그것이 자녀들의 성공에 밑거름이 되었다는 사실을 두고 법정의 판관이 아니라 실망하고 분노한 국민마음이 재판관이 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조국만 그런 것이 아니라 조국을 매도하는 사람들도 그와 같이 오랜 세월 불법과 불공정, 특권과 반칙을 일삼아왔다는 점에서 다를 바가 없다고 한다. 여기서 신교수는 둘 다 아닌 양비론으로서, ‘두 개의 공정성’, 혹은 ‘두 동강 아닌 복합적 갈등 상황’ 등의 개념을 썼고, 그 해결책으로 ‘포용’의 원리를 제시한다.

 

신진욱 교수는 양쪽 다 일리가 있다는 뜻으로 이런 개념을 쓴 것 같다. 그러나 신교수의 주장은 근본적으로 초점을 흐리는 것이다. 왜 이도 저도 아닌 도덕성을 가지고 조국을 매도하고 있는가 하는 점에 대한 궁극적인 반성 의식이 없기 때문이다. 이쪽저쪽이 다 재산이나 도덕성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면, 왜 하필 이 시점에서 구태어 조국 장관을 흠집을 내고 있는가 하는 점 말이다. 마녀사냥의 담론은 도덕성 여부에서 시작되어 도덕성으로 끝을 맺는다.

 

신교수가 제시하는 포용 논리의 비현실성은 위력과 능력을 구분하는 데서 분명해진다. 신교수에 따르면, ① 위력은 반대를 뚫고 뜻을 관철하는 것이지만, 능력은 반대자를 협력자로 만들어 함께 뜻을 세우고 구현하는 것이란다. ② 진정한 포용의 정치는 반대하고 미워하는 국민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설득하려는 인내라고 하고, ③ 우리는 잘해왔고, 앞으로도 잘할 것이다.

 

신교수의 이 세 가지 명제는 다 틀렸다. 현실에도 맞지 않고 앞으로도 현실화될 거 같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도 잘 해오지 않았고 앞으로도 잘 될 거 같지 않다는 말이다. 너나 할 것 없이 욕심으로 가득하여 사실을 밥 먹듯이 왜곡하는 언론이 그러하다. 국민의 소리를 대변한다고 하면서, '문재인 정권의 헌정유린 중단과 위선자 조국 파면 촉구 광화문 규탄대회'이란 구호 하에 현 정부를 공격하는 나경원, 황교안도 포용과는 거리가 먼 곳에 있다. 반대자를 어떻게 협력자로 만들 것인가? 신진욱 교수는 도무지 이 세상에서 실현 불가능한 것들을 마치 실현이 가능한 것처럼 주문하고 있다. 하릴없는 이론의 공상가 같다.

 

현학적으로 위력과 능력 같은 것을 구분하고 있을 것이 아니라, 악의적으로 서로 갈등하는 욕심을 어떻게 잘 조정할 수 있는지, 권력구조적으로 해결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것은 권력 상호간 견제와 균형을 도모하는 것이다. 권력끼리 서로 두려워하도록 해야 한다는 말이다. 욕심은 없앨 수 없으나, 두려워하게 만들 수는 있다. 신교수는 ‘화해와 통합론’을 들고 나와서 욕심을 없애라고 당치도 않는 주문을 하고 있다. 그리고 화해와 통합이 안 되는 경우에 대한 대책도 지금으로서는 신교수에게서 보이지 않는다. 그 대책은 위력을 능력으로 하자는 부질없는 공상의 바램이 아니라, 이열치열, 권력을 가지고 권력을 견제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조국 사태를 통해 드러난 윤석열의 ‘먼지털이식’ 수사는 검찰의 권력이 위험수위를 넘어섰음을 만인의 눈앞에 드러냈다. 칼자루를 잡고 ‘먼지털이식’ 수사를 할 수 있는 그 검찰조직의 독재성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현재 검찰 권력구조상에서 윤석열은 관료조직에서 그보다 상위 서열에 있는 조국을 어떤 식으로든 수사할 수는 있다. 그러나 윤석열 자신은 어떤 비리에 연루되어 있다 하더라도 수사의 대상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윤석열은 윤중천의 별장에 간 적이 없고 아니 간 적이 있어도 접대 받은 것이 아니라 딴 볼일로 그냥 간 것이 아니므로, 그래서 그가 도덕적이므로 비도덕적인 조국에 대해 먼지털이식 수사를 해도 된다? 윤석열이 조국을 털 수 있는 것은 그런 논리에 기인한 것도 아니고, 그런 논리가 성립되는 것도 아니다. 사실 윤석열이나 그 일가의 도덕성은 조국 같은 ‘먼지털이식’ 수사를 받아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핵심은 다른 곳에 있다. 현재 한국에서 검사뿐 아니라 판사도 자신의 비리, 그 권력의 남용 오용에 대해 처벌되는 절차가 거의 전무다. 검사, 판사의 전횡은 식민지배와 독재정권의 하수인으로서 독립운동 하는 자, 이른바 친미 자본주의에 반대하는 자를 빨갱이로 몰아 제거하는 데 이용되어 왔다.

 

조국과 윤석열의 차이는 분명히 있다. 조국은 검찰의 독점적 권력구조를 타파하려 했으나, 윤석열은 조국 일가의 도덕성에 초점을 두고 있는 것이다. 조국은 검찰 권력 구조 타파뿐 아니라 재판제도도 수정하려고 했다. 지금같이 엉터리 재판을 받고 사법피해자가 넘쳐나는 마당에, 조국은 사법고시를 통과하지 않은 민간인으로 참심제 재판제도를 도입하려는 구상을 발표한 적이 있다. 법조인과 민간인을 합하여 재판부를 구성하는 것이다. 이것은 조국 개인의 도덕성과는 무관하고 사법 권력구조의 개편이다.

 

이런 참심제 발상은 기득권 사법권력에는 맹랑한 반란, 이른바 ‘빨갱이’ 같은 것으로 보이는 것이다. 사실 북한에서 참심제를 실시하고 있다. 1심 재판 3명의 재판관 가운데서 1명은 법조인, 나머지 2명은 민간인으로, 세 명의 재판관이 똑같은 권한을 가지고 판결에 참가한다. 민중의 판단력을 의심하고 두려워해서 재판은 법조인이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한 번 돌아보시라! 사법권력이 법조인에 의해 얼마나 농단될 수 있는지를!! 양승태의 사법권력 농단 의혹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그 양승태는 의젓하게 품위를 유지하고 있고, 조국은 만신창이 먼지털이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이 바로 한국 사법권력이 빚어내고 있는 현실이다. 양승태 수사와 재판에서는 그렇게도 인색하던 압수수색영장이 조국의 경우에는 주민등록증 발급하듯이 하루 밤에 20여건, 총70여건이 넘는다고 하지.. 아마도.

 

검찰 권력구조의 제도적 개편을 노렸던 조국과 달리, 윤석열은 조국 가족 신상 털기에 나섰다. 조국의 비도덕성을 들고 나오는 윤석열은 적지 않은 사람들의 눈에 마치 마치 정의의 사도인 것처럼 비치고 있다. 그리고 자한당, 더불어민주당을 가리지 않고 조국 아닌 사람들은 적어도 조국 보다는 더 도덕적인 것인 양 의제되고 있다. 조국을 제거하는 것이 광복 이전, 이후 가릴 것 없이 정부 공권력이 벌여온 범죄를 다 세탁하고 또 재발하지 않도록 하는 만병통치약이라도 되는 듯하다.

 

조국 일가의 범죄성 여부는 수사하고 재판을 거쳐서 밝혀질 것이겠으나, 검찰 개혁은 그들 비리 여부와 무관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과거에는 독립운동, 지금에는 기득권에 도전하는 노동운동, 민주운동을 빨갱이로 몰아 탄압해오던 친일, 친미, 독재 정권의 하수인인 검찰이 지금은 ‘도덕성’을 앞세워서 독재 권력구조의 타파 개조 전선을 막고 있다.

 

한 집안의 도덕성이 아니라 한국을 질식시켜온 권력구조의 개편이 관건이다. 권력 기관 간 견제는 서로를 감시하도록 하며, 비열하고 비도덕적이고 포용력 없는 못된 놈도 눈치보고 잘하지 않으면 안 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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