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가짜뉴스를 만드는가?
무엇이 가짜뉴스를 만드는가?
  • 최자영 (전 부산외국어대학교 교수)
  • 승인 2019.10.29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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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뉴스 대책을 발표하는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
가짜 뉴스 대책을 발표하는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

독재자보다 더 무서운 ‘빨리’ 습성이 갖는 독재의 경향성

흔히 독재의 책임은 독재자에게 있다고 생각하고 사람을 매도한다. 그러나 사실 독재자보다 더 무서운 독재의 씨앗이 우리들 자신의 마음속에 있다. 무엇이든지 ‘빨리’ 결론을 내고 싶어 하는 우리의 습성이 그것이다.

독재가 이루어지는 것은 독재자만의 탓이 아니라 민중이 다소간 호응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 호응은 독재라는 대상에 대한 지지가 아니더라도 그 독재를 가능하게 하는 우리의 습성, 경향성에서 나온다. 스스로 독재를 싫어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부지중에 독재의 온상을 마련해주는 것이 바로 우리네 ‘빨리’ 문화이다.

여럿이 모여서 토론을 하면 자연히 갑론을박 말이 많아지고 결론 도출이 늦어진다. 그러면 그런 과정이 비효율적, 비생산적이라는 생각이 들고, 그래서 신속하게 결정을 내는 것이 더 나은 것 같이 보인다. 이것이 바로 독재를 가능하게 하는 고속도로가 된다.

‘빨리’라는 것은 부득이 공정성이 없는 졸속의 결론으로 이어지곤 한다. 타당성이 결여된 결론 안 내는 것만 못한 것이지만, ‘냄비 근성’으로 비하되곤 하는 우리네 한국인의 경향성은 바르지 못한 결론에 이르러도 ‘빨리’ 내는 것만으로 할 일을 다 한 것 같은 느낌을 갖는 것이다.

‘신속’하기만 한 재판은 사법피해자를 양산한다. 한국 헌법 제27조 3항에는 “모든 국민은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 형사피고인은 상당한 이유가 없는 한 지체 없이 공개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되어 있다. 그런데 ‘신속’은 있는데, ‘공정’의 개념이 결여되었다. 공정하지 못해도 신속하게 처리만 하면 된다는 결론이 여기서 나온다. 실제로 한국 사법계는 ‘불필요한 분쟁을 줄이기 위해서’ ‘분쟁의 끝없는 지속을 염려하여’ 정보를 잘 공개하지 않는다. 정보도 은폐한 가운데 벌어지는 한국의 재판은 공정성과는 참으로 거리가 멀고, 급기야 사법피해자들이 사회에 넘고 넘친다.

신탁통치에 대한 미국 소련의 입장을 왜곡한 조선일보, 동아일보의 가짜 뉴스

‘빨리’ 습성이 권력의 집중 혹은 테러와 연계되면, 거짓 뉴스에 의한 폐단이 발호한다. 가짜 뉴스는 ‘빨리’ 결론을 도출하는 제도와 맞물려서 진실과 동떨어진 엉뚱한 결론에 도달해있기 때문이다. 이 때 ‘빨리’ 내린 결정은 우리 자신을 옭아매는 족쇄가 된다. 반대로 결론 도출의 절차가 획일적이 아니고 그 결정권이 지역적 혹은 시민들의 손에 분산되어 있는 상황이라면, 언론사가 아무리 거짓 정보를 흘려도 그 영향은 미미해진다. 여러 분산된 결정의 절차를 거치면서 시간도 가고 또 다른 시각이나 정보도 참조하게 되기 마련이다.

한 예로, 한국은 여전히 반동강이 난 채 세계에서 보기 드문 나라로 남아 있는데, 그 원인을 들여다보면 거기에도 신탁통치의 찬반을 둘러싼 가짜 뉴스가 자리하고 있다. 뉴욕타임즈, 조선일보, 동아일보 등의 가짜 뉴스가 그것이다. 가자 뉴스의 폐해가 어저 오늘의 일이 아니며, 해방 이후 줄곧 우리의 운명을 좌우해왔다는 사실은 주지하고 반성할 필요가 있다.

1945년 12월 16일 모스크바에서 미국, 영국, 소련의 세 나라 외상회의(삼상회의)가 열렸을 때, 미국은 신탁통치 중심의 국제적인 해결방식을 주장하였으나 쏘련은 먼저 임시정부를 수립한 다음 신탁통치를 한다는 주장이었다. 임시정부란 미국과 소련의 공동위원회가 한국의 정당ㆍ사회단체와 협의하여 새로운 임시정부를 수립한다는 내용이다. 이런 쏘련의 입장은 당시 민중의 지향성으로보아 임정을 수립하는 것이 쏘련에 유리하다는 판단에서 나왔다. 1945년 2월 얄타회담에서도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은 “한국인은 자치 능력이 없다. 아마 40년 내지 50년 정도는 신탁통치를 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으나, 소련의 스탈린이 “그렇게 길게는 안 된다. 5년 정도로 하자”고 했다.

그런데 한국현대사의 향방을 결정짓는 어마어마한 가짜 뉴스 사건이 터졌다. 1945년 12월 27일자 동아일보는 모스크바 3상회의의 결과를 “소련은 신탁통치 주장”, “미국은 즉시 독립 주장”이라고 보도한 것이다. 동아일보는 미국과 소련의 주장을 정반대로 보도하여 즉각적 독립을 요구하는 민족감정을 자극시켰다.

곧바로 신탁통치를 반대하는 반탁운동이 우익세력을 중심으로 일어났다. 특히, 김구를 중심으로 한 중경 임정은 자신들이 주도권을 잡기 위해 반탁운동을 주도하였다. 당시 남한지역을 점령하고 있던 미군정은 이를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동아일보의 왜곡보도를 해명하지 않았다. 오히려 미군정은 우익세력의 정치적 입김을 강화시키기 위해 이를 방조했다. 심지어 최신 연구에 의하면, 이 오보 기사의 출처는 도쿄의 미육군 극동군사령부와 서울의 주한미군사령부가 조직적으로 관련되어 있었다고 한다.

찬탁 인사 송진우의 암살과 거짓 뉴스가 조장한 테러

당시 우익 청년단원들은 신탁통치는 식민통치의 한 방식이며 이를 찬성하는 자는 반역자이기 때문에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찬탁으로 전환한 박헌영, 여운형, 김원봉, 허헌을 테러 표적으로 삼았고, 진영을 넘어 김규식, 안재홍, 배은희, 명제세, 장덕수 등도 찬탁을 하여 암살의 표적이 되었다. 신탁통치에 관한 이해 방식과 테러는 독일의 상황과는 차이가 있다. 2차 대전 후 독일은 다소간 신탁통치를 받았고 그 후 동·서 독일로 각각 분리 독립했다.

당시 1945년 12월 29일 김구 등과 함께 경교장에서 회의한 송진우는 찬탁 발언을 했다가 바로 그날 밤 새벽에 자택에서 한현우 등에 의해 총탄을 맞고 죽었다. 당시 송진우는 동아일보 사장으로 있었고, 동아일보 창간자는 최대 우파 정당인 한민당의 핵심 인사 김성수였다. 다음은 송진우가 암살되기 전날 한 발언이다.

“여기 누구라도 모스크바 3상회의에서 결정된 의정서의 원본을 제대로 읽어본 분이 있습니까? 내가 알고 있기로는 그 내용이 미소공동위원회를 설치한 후 한국의 정당 · 사회단체들과 협의해서 남북을 통일한 임시정부를 세우고 5년 이내의 신탁통치를 하는 것으로 되어 있는데, 내가 알고 있는 게 정확하다면 길어야 5년이면 통일된 우리의 독립정부를 세울 수 있는 것을 그렇게 극단적인 방법으로까지 반대할 이유는 없지 않겠습니까? 신탁통치가 길어야 5년이라고 하니 3년이 될 수도 있는 것인데 그렇게 거국적으로 반대할 이유가 뭐 있습니까. 물론 나도 신탁통치는 반대합니다. 그러나 반대 방법은 다시 한 번 여유를 가지고 냉정히 생각해 봅시다."

"여유를 가지고 냉정히 생각해 보자"한 송진우의 발언은 '빨리' 습성을 가진 한국인에게 먹혀들지 않았고, 바로 그날 밤으로 그는 암살당했다.

‘민족주의 대 반민족 친일’ 구도가 ‘좌익 민족반역자 대 우익 애국자’ 구도로 전환

신탁통치 파동은 1946년 1월 22일자 타스(Tass) 통신이 모스크바 3상회의의 협상내용을 공개하면서 일시적으로 수그러들었으나 당시의 정치지형은 이미 변형되어 있었다. 그 전의 ‘민족 대 반민족(친일파)’의 대립구도가 신탁통치 찬반을 계기로 ‘좌익 대 우익’의 구도로 전환되었다는 사실이다. 즉, 남한의 정치지형이 ‘민주의원’으로 대표되는 우익연합체와 ‘민족전선’이라는 좌익연합체로 헤쳐 모이게 되었다. 좌우의 대립과 갈등이 본격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로 인해 친일파는 신분 세탁을 할 수 있었다. 반탁운동이 있기 전 ‘민족반역자’란 말은 ‘친일파’를 의미했다. 그러나 모스크바 3상회의의 내용이 잘못 알려지면서 반탁 입장을 고수하지 않는 자는 모두 민족반역자가 되어야 했다. 당시 “신탁통치 배격운동에 협력치 않은 자는 민족반역자로 규정”한다는 구호가 이를 잘 보여준다. 그러다보니, 친일파들은 반탁운동을 계기로 자신들의 과거가 면제되고 오히려 애국자로 행세할 수 있게 되었다.

실제로 조선총독부에 근무한 관리, 경찰 출신의 인사들은 반탁운동에 대거 참여하였다. 반공주의의 일환으로 전개된 반탁운동은 소련을 ‘악마화’ 함으로써 과거 친일파의 문제를 은폐하는 효과를 발휘하였다.

악마의 마녀사냥을 가능하게 한 현실적 배경은 식민지 지배에 의한 획일적 권력 구조 및 우익 테러 행위에다 가짜 뉴스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었다.

가짜 뉴스를 치명적으로 만드는 것은 획일적인 권력구조이다

신탁통치를 둘러싼 가짜 뉴스가 한국의 장래에 결정을 미치게 된 것은 그 자체로서가 아니라, 그것이 ‘신속’하고 획일적인 정치적 결정 구조와 맞물려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동아일보의 허위기사가 아니었어도 한국은 두 동강이 났을 것이다. 그 결정은 친탁이나 반탁하는 민중의 뜻이 아니라, 이미 결정된 강대국 간의 세력 분할에 의해 운명 지워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강대국의 결정이 그대로 한국에 적용된 것은 바로 한국 자체가 가진 환경, 비민주적, 획일적인 권력 구조 탓이다.

‘신속’한 결정의 절차는 언론의 가짜 기사를 조장하는 촉매가 되었고, 그 폐단은 멀리 식민지 시대를 이어져 내려온 각종 권력의 집중과 무관하지 않다. 그것은 이승만, 박정희 독재정권을 거쳐 오늘날까지도 제도 전반에, 그리고 우리 마음속에까지 ‘빨리’ 문화로 자리하고 있다.

숙의(토의) 제도는 ‘빨리’가 아니라 ‘천천히’ 사안을 검토하는 것이고, 가능한 한 여러 사람들의 견해가 반영되도록 한다. 가짜 뉴스와 독재는 상통하는 점이 있다. 그것은 ‘빨리’ 결정에 이를 수 있도록 소수의 손에 권력이 집중되는 것을 선호하고, 반대로 다수가 참여하여 의견을 개진하고 천천히 결론에 이르는 숙의(토의) 민주정치를 싫어한다. 거짓 뉴스의 폐단과 함께 권력의 획일적 독재를 막으려면 무엇보다 우리네 ‘빨리’ 습성을 반성하고 고쳐야 한다. 중요한 것은 ‘빨리’가 아니라 ‘공정성’이다. 그 공정성은 ‘천천히’ 숙의(토의)하는 데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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