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문] 백선엽을 논하다.
[기고문] 백선엽을 논하다.
  • 장계황(한국역사영토재단 이사장)
  • 승인 2020.07.18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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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세 시대라 하더니 백선엽 장군께서 100수를 누리다 저 세상으로 가셨다. 삼가 백선엽 고인의 명복을 빈다. 장군의 죽음은 우리 사회에 다시 이념적 파장을 가져왔는데, 그의 평생 행적에 대한 비판과 일부 지지 세력에 의한 우상화 전략이 한데 어우러져 한치 앞을 내다보지 못 할 지경이다. 사회적 갈등문제는 친일이 늘 문제이다. 문제에 대한 백선엽의 일대기를 조망해본다. 과연 현충원에 묻힐 자격은 있는지 그의 행적을 조망해 보고자 한다.(이 글은 장계황선생의 페북글에 실린 것으로 장계황 선생의 동의 하에 게재하게 되었습니다.-편집자 주)

 

1. 자발적 만주국 군관학교 입학

우리사회가 늘 갈등으로 문제가 되는 사안에는 친일이라는 꼬리표가 붙어 다닌다. 40년 간 일제강점기의 사회구조가 해방과 독립이 된 지금의 시점에서 보면 민족과 반민족으로 구분 될 수밖에 없다. 일부의 사람들은 그 시절에 친일을 하지 않고 어떻게 살 수 있는가?’라고 항변을 하기도 한다.

 

백선엽 간도특설대 출신으로 반민족행위를 한 것이 입증되었으나, 백선엽의 전쟁영웅설은 박정희가 집권하고 난 후 집중적으로 부각 되었으며 미군의 영어학교 제1기 출신으로서 미군과의 돈독한 관계가 전쟁영웅으로 만든 것이다.
백선엽 간도특설대 출신으로 반민족행위를 한 것이 입증되었으나, 백선엽의 전쟁영웅설은 박정희가 집권하고 난 후 집중적으로 부각 되었으며 미군의 영어학교 제1기 출신으로서 미군과의 돈독한 관계가 전쟁영웅으로 만든 것이다.

역사에 나오는 분명한 사실은 친일 하지 않고, 독립운동을 하신 많은 선조들이 일단 있었고 적극적으로 가담하지 않은 대부분의 민초들이 존재 했다. 먹고 살기 위해 일제의 정책에 따른 것을 우리는 친일이라 하지 않는다. 얼마나 적극적으로 가담했는가와 어떤 역할을 어떻게 하여 반민족적 행동을 했는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백선엽은 자기 의지에 의해 자발적으로 경제 활동이나 먹고 살기 위한 것이 아닌 일본군이 운영하고 일본을 지키기 위한 만주국 군관학교에 입학을 하였다. 이것은 생존과도 관계가 없는 것이고 오로지 자기 출세욕을 위해 반민족 행위를 할 수밖에 없는 만주국 군관학교에 자발적으로 자진하여 입학한 것이다. 일제에 단순 부역하거나 일본군에 단순 가담하여 전쟁에 나간 것과는 다른 행위이다.

 

2. 간도특설대와 백선엽

만주국 군관학교 제9기로 졸업한 백선엽은 간도특설대에서 복무하며 만주국 헌병 중위로 광복을 맞이한다.

간도특설대는 당시 간도(間島)에서 조선 독립군과 중국인이 연계한 반일-반만주국 투쟁(대표적인 조직은 중국 공산당휘하의 동북항일연군)의 활약으로 곤경에 빠진 만주국-일본 당국에 의해 설립되었다.
간도특설대는 당시 간도(間島)에서 조선 독립군과 중국인이 연계한 반일-반만주국 투쟁(대표적인 조직은 중국 공산당휘하의 동북항일연군)의 활약으로 곤경에 빠진 만주국-일본 당국에 의해 설립되었다.

 

만주국의 참의원을 지낸 친일파 이범익이 '조선 독립군은 조선인이 다스려야 한다.'며 설립하여 대대장 등 몇몇 직위를 제외하고 조선인으로 채워졌다. 명칭도 이에 유래하였고, 일본군이 아닌 만주국군에 소속되었다. 백선엽은 간도특설대의 조직원이었다.

본인의 일본어로 저술한 책 젊은 장군의 조선전쟁에서도 언급하였듯이 당시 민간인 조선인을 사살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회고하여 항일운동을 하던 독립군과 민간인 사살에 앞장선 것이다.

 

3. 친일파가 친미주의자가 되는 것은 성향이다.

그의 행적을 살펴보면 친일반민족자들의 행적의 기준이 되는 친일파가 친미주의자가 된다.”는 코스를 그대로 밟게 된다. 해방직후에는 친일파의 행적에 대한 세탁을 하기 위해 당시 신망 받던 조만식에게 찾아가 비서로 잠시 활동했으며, 1945125일에 만들어진 군사영어학교 제1기에 들어서면서 친미적 사고를 갖게 되고 이를 바탕으로 미군과 협력관계 속에서 육본정보국장 시절 발생한 여순민중항쟁 이후 공산게릴라 소탕 및 숙군사업을 지휘 하는데 여기서 김창룡에 의해 검거된 박정희를 도와주어 우리사회의 역사를 바꾸는 역할을 했다.

 

4. 숙군사업에서 박정희를 살려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형인 박상희는 남로당의 거물이었고 박정희는 부모처럼 따랐으며 그는 당시 우익에 맞아 죽었다. 이 일을 계기로 박정희는 남로당에 가입을 한다. 여순사건 이후 남로당 계열의 군인을 숙청하는 '숙군'과정에서 박정희는 체포되어 조사를 받고, 이후 19492'군병력 제공죄'로 사형을 구형받은 뒤 결국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이때 백선엽은 육군본부에서 정보국장으로 재직 중이었는데 김안일 방첩대 과장을 통해 직접 면담한 후 만주 시절 동료 20명으로부터 '박정희는 공산주의자가 아니다'는 보증서를 제출받고 무죄 방면시켜줬다. 뿐만 아니라 백선엽은 불명예 제대한 박정희를 정보국에서 문관신분(현 군무원)의 북한반 상황실장으로 일할 수 있게 배려해 주었다. 백선엽은 자신의 판공비 일부를 떼어서 박정희의 월급으로 지불했다. 박정희의 장군 진급도 백선엽이 직접 인사를 했다.

이후 박정희는 5.16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잡게 되며 생명의 은인이며 부활의 길을 열어준 백선엽에 대해 정치가, 행정가, 외교가의 길을 열어주었으며 전쟁영웅으로 부각시켜 사회적 영웅으로 만들어 준 것이다. 이 관계론에 의해 이미지화 된 백선엽이 지금 다시 우익들에 의해 우상화 되고 있는 것이다.

 

5. 전쟁영웅과 낙동강 전투

우리사회에서 백선엽은 우익의 상징이며 전쟁영웅으로 자리매김 하고 있다. 전쟁영웅 맞다. 그러나 전쟁영웅이 백선엽 혼자라는 데는 누구도 동의하지 않는다. 필자의 아버지도 참전했으며, 당시 수많은 학도병으로부터 미군에 이르기 까지 적어도 8개 사단이 참여하여 낙동강 전투에서 승전하고 북진할 수 있었던 것이다. 전투에 참여했던 모두가 전쟁영웅인 것이다.

백선엽의 전쟁영웅설은 박정희가 집권하고 난 후 집중적으로 부각 되었으며 미군의 영어학교 제1기 출신으로서 미군과의 돈독한 관계가 전쟁영웅으로 만든 것이다. 그가 전쟁 영웅이기에 친일 반민족 행위가 용서 된다는 논리는 말이 안 되는 것이다.

 

 

6. 그는 반민특위에서 사형을 당했어야 할 인물이었다.

해방이 되고 나서 반민족행위특별조시위원회(이하 반민특위)1947년 친일잔재청산을 위하여 남조선과도입법의원은 '민족반역자·부일협력자·전범·간상배에 대한 특별법'을 제정한 바 있다. 그러나 미군정은 이 법안이 미군정의 동맹세력인 친일경찰, 친일관료, 친일정치인을 대상으로 하고 있었기 때문에 인준을 거부하였다. 이로써 친일파 청산의 과제는 정부수립 후로 넘어가게 되었다.

19488월 헌법 제101조에 의거하여 국회에 반민족행위처벌법기초특별위원회가 구성되고, 이어 9월 특별위원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반민법)’을 통과시켰다. 이 법에 의하면 국권 피탈에 적극 협력한 자는 사형 또는 무기징역, 일제로부터 작위를 받거나 제국의회의원이 된 자, 독립운동가 및 그 가족을 살상·박해한 자는 최고 무기징역 최하 5년 이상의 징역, ·간접으로 일제에 협력한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이나 재산몰수에 처하도록 하였다.

백선엽은 간도특설대 출신으로 반민족행위를 한 것에 대해서는 역사적 평가에서 이견이 없을 것이다. 그러면 1948년 정부수립과 194915일 반민특위는 중앙청 205호실에 사무실을 차리고 8일 박흥식을 체포함으로써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는데 6.6 사건으로 반민특위의 폐기법안을 통과시키게 함으로써 민족반역자에 대한 처벌을 불가능하게 하였다.

만약 반민특위가 그대로 진행 되었다면 백선엽은 사형에 쳐해 졌을 것이며, 이후 한국전쟁 영웅 등의 수식어는 없었을 것이다. 이는 민족주의 좌절과 단절 그리고 친일 반민족세력이 다시 활개 치는 물꼬를 터 준 것이다. 여기에 백선엽이 있는 것이다.

 

7. 친일파 행적의 결과에 따른 학습효과

프랑스는 드골에 의하여 나치에 협력하고 부역자 한 자에 대해 7천여 명을 사형 집행 시켰다. 역사의 죄를 물은 것이다. 만약 또 다른 형태의 전쟁이 일어나거나 지배를 받는 상황이 온다면 프랑스인들은 절대 협력이나 부역을 하지 않을 것이다. 드골의 역사 심판을 보았기 때문이다.

반면 일본이 다시 쳐들어 와 우리가 식민 지배를 다시 받는다면 대부분의 국민들은 일본에 협력하거나 부역하거나 동족상잔의 비극을 만들 것이다. 혹시 해방이 되거나 독립이 되어도 더 잘 먹고 잘 살 수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학습 효과이다. 백선엽 효과인 것이다. 친일반역을 하거나 사대주의 사상으로 강대국에 자국의 이익을 갖다 바치는 일이 있어도 그들이 주류세력으로 더 잘 먹고 잘 산다면 누가 민족적 사고에서 애국을 하겠는가? 지금 이 사회는 친일반민족 행위를 한 자들이 더 기세 등등하며 더 잘 먹고 주류세력으로 잘 살고 있는 사회이다. 분명 잘못 된 것이다.

 

8. 우리사회 어디로 갈 것인가?

민족주의자가 이 사회를 지켜나가야 한다. 외세의 힘에 기대는 기회주의자들이 발을 붙이지 못하게 하여야 한다. 사회 기강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정의가 살아 숨 쉬고 민족주의가 우선이 되고 불의나 반민족은 반드시 처벌 받는 사회가 되어야 모두가 하나가 될 수 있고 갈등이 없어질 것이다.

우리는 지금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다

천손으로서 홍익인간으로 살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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