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일 분신항거50주기 붓글씨 전 , "오늘 우리가 전태일입니다"
전태일 분신항거50주기 붓글씨 전 , "오늘 우리가 전태일입니다"
  • 김태희(직접민주주의뉴스 편집장)
  • 승인 2020.09.16 2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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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붓이야기

          전태일 분신항거50주기 붓글씨 전

일하는 사람들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위해

제 목숨을 던진 청년이 있습니다.

그 마음의 결을 하나하나 읽으며 붓을 모았습니다. 찬찬히,

 그의 곁에서 함께 걸어가 주시겠어요? 오늘 우리가 전태일입니다.

전태일 - 김성장 쓰다
전태일 - 김성장 쓰다

 

              다시 보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全泰壹

초등학교를 4학년에 중퇴하고, 17세 때부터 평화시장의 의류 제조 회사에서 재단사로 일했다.

동료 재단사들과 바보회를 만들어 평화시장의 노동 조건 실태를 조사하고, 이를 토대로 노동청과 서울특별시에 노동 조건 개선을 요구하는 진정서를 제출했지만 묵살 당했다.

1970111322세의 젊은 나이에 평화시장 앞에서 노동자의 근로 조건 개선을 요구하고, ‘근로기준법 화형식을 한 후 분신자살했다.

인간다운 삶을 위하여

전태일은 대구부 남산동(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남산동)에서 가난한 노동자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재봉사였던 아버지 전상수는 의류업 계통의 봉제 노동자였는데 나이가 들면서 집에 재봉틀 한두 대를 들여 놓고 삯일을 하며 생계를 꾸려 나갔다. 전태일이 여섯 살 때 부산에서 소규모 양복점을 하던 그의 집은 염색공장에 맡긴 원단이 장마로 상하는 바람에 파산하고 서울로 상경하게 되었다. 몇 년간의 고생 끝에 전상수는 천막집 한 채와 재봉틀 한 대를 사들여 삯바느질 일을 하게 되었고, 가세는 점점 나아졌다.

검은 빵과 한 컵의 물 - 박철
검은 빵과 한 컵의 물 - 박철

 

그러나 4·19혁명으로 인해 막대한 옷값을 떼먹히고 다시 빈손으로 거리에 나앉게 되면서 대구로 돌아왔다. 전태일은 학교를 중퇴하고 신문팔이, 삼발이 장사 등을 하며 가족의 생계를 떠맡았다. 그러나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 힘든 일에 1년간 가출했다 돌아왔지만 잠시 학교 생활을 하다 재봉 일을 하라는 아버지의 말에 동생 태삼과 함께 서울로 야반도주를 감행했다. 그의 손에는 작은 이불 한 채와 아버지가 만든 어른용 모직 점퍼 8장뿐이었다. 그러나 서울에서 갈 곳을 찾지 못하고 헤매던 그는 동생 걱정 때문에 곧 다시 대구로 돌아왔다.

하루 14시간 작업 시간 단축 한달 두 번 일요일 휴일, 시다공 수당 70원으로 인상 - 송정선 붓
하루 14시간 작업 시간 단축 한달 두 번 일요일 휴일, 시다공 수당 70원으로 인상 - 송정선 붓

 

하루 14시간씩 노동 일당이 당시 차 한 잔 값이던 50

아버지의 계속되는 술주정과 구타로 어머니가 서울로 식모살이를 떠나자 전태일도 여동생을 데리고 서울로 오게 되었다. 서울에서 그는 아버지에게 배운 재봉 기술로 청계천 평화시장의 한 의류 공장에 보조로 취업했다.

그는 하루 14시간씩 노동을 하며 일당으로 당시 차 한 잔 값이던 50원을 받았다. 다음 해 미싱사로 옮겨 재봉사로 일하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어린 여공들이 적은 월급과 열악한 환경, 과중한 노동에 시달리는 것을 보며 노동운동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특히 함께 일하던 한 여공이 가혹한 노동 환경으로 인한 직업병인 폐렴으로 강제 해고되자 충격을 받았다. 그러나 그 역시 여공을 도왔다는 이유로 해고되었다. 그는 그 후 재단사 보조로 취직했고 재단사가 다른 회사로 옮기면서 마침내 재단사 자리에 올랐다.

노동자의 이름 - 강인숙
전태일의 아픔을 떠올리며 - 강인숙

 

그러나 재단사가 되었어도 그의 어려운 형편은 여전했다. 1967317일의 일기에서는 당시 노동 현실을 엿볼 수 있다. “정말 하루하루가 못 견디게 괴로움의 연속이다. 아침 8시부터 저녁 11시까지 하루 15시간을 칼질과 다리미질을 하며 지내야 하는 괴로움, 허리가 결리고 손바닥이 부르터 피가 나고, 손목과 다리가 조금도 쉬지 않고 아프니 정말 죽고 싶다. ……육체적 고통이 나에게 죽음을 생각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 고통이 더욱 심하기 때문이다. 두 가지 가운데 한 가지만 없어도 좋겠다. 미싱 6대에 시다가 6, 다른 집 같으면 재단사, 보조, 시다 3명이 해야 할 일을 나 혼자 하니 정말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희누나 정희를 떠올리며 잠 못이루는 열아홉 태일을 - 정혜 옮기다
희누나를 떠올리며 잠 못이루는 열아홉 태일을 - 정혜 옮기다

 

그러던 중 우연히 노동자의 인권을 보호하는 법인 근로기준법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그 뒤 해설서를 구입해 근로기준법을 공부하면서 법에 규정되어 있는 최소한의 근로 조건조차 지켜지지 않는 현실에 분노를 느끼게 되었다. 전태일은 종종 어린 보조들을 집으로 돌려보내고 밤늦도록 혼자서 보조가 해야 할 일을 해 주곤 했는데 이것을 여러 번 업주에게 들켜 해고되었다.

전태일 평전에서 - 김현화
전태일 평전에서 - 김현화

 

이 일을 계기로 그는 19696월 평화시장 최초의 노동운동 조직인 바보회를 창립했다. 그리고 평화시장 노동자들에게 근로기준법의 내용과 현재 근로 조건의 부당성을 알리고 설문을 통해 근로 실태를 조사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일은 업주들의 방해로 실패했고 전태일은 더 이상 평화시장에서 일할 수 없게 되었다. 그는 한동안 공사장에서 막노동을 하며 지냈다.

불의한 인간이-전태일 수기에서- 김광철
불의한 인간이-전태일 수기에서- 김광철

 

19709월 전태일은 노동운동을 하기 위해서는 평화시장 안에 자리를 잡아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평화시장으로 돌아왔다. 그는 재단사로 일하며 이전의 바보회를 발전시킨 삼동친목회를 조직했다. 그는 틈나는 대로 서울시청, 노동청 등을 찾아다니며 진정서를 내고 신문기자들을 만나거나 방송국을 찾아갔다. 좀 더 자료가 많다면 방송을 고려해 보겠다는 방송국 관계자의 말에 그는 노동 실태 조사 설문지를 돌려 126장의 설문지와 90명의 서명을 받아 1970106일 노동청장 앞으로 평화시장 피복제품상 종업원 근로개선 진정서를 제출했다.

야간학교 시절 더불어 행복의 기쁨 - 은진영
야간학교 시절 더불어 행복의 기쁨 - 은진영

 

마침내 이 내용이 다음 날 석간신문인 경향신문골방서 하루 16시간 노동이라는 표제로 사회면 톱기사로 실렸다. 전태일 등 삼동회회원들은 본격적으로 임금, 노동시간, 노동환경의 개선과 노동조합 결성 등을 위해 사업주 대표들과 협의를 벌였다. ‘삼동회를 주축으로 재단사들의 사기가 하늘을 찌르자 사측과 정부에서는 안절부절 못했다. 업주들은 삼동회를 사회주의 조직으로 매도함으로써 노동자들이 노동운동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방해했다.

얼마나 위로해야 할 나의 전체의 일부냐 - 남영범
얼마나 위로해야 할 나의 전체의 일부냐 - 남영범

 

그러나 당시 신민당의 김대중이 국정 전반에 걸쳐 비판의 소리를 높여가고 있던 시절이라 박정희 정권이 그 어느 때보다 사회 여론을 살피던 때였다. 만약 노동자들의 참상이 언론에 계속 보도된다면 대통령 선거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 뻔했다. 그러다 보니 이를 무마하기 위해 노동청에서는 뒤늦게 실태 조사를 하겠다며 전태일 등에게 노동절에 포상하겠다라거나 모범청년이라며 회유하려고 들었다. 결국 노동청에서 해고된 재단사들의 취직을 모두 보장하고 일주일 안에 노동 조건을 개선하겠다고 제안했다. 회원들은 모두 취직했고 전태일도 재단사 보조로 취직했다. 그러나 근로 조건은 개선되지 않았다.

태양은 마른 대지 위의 무엇이든 태워버릴 것 같이 이글거린다- 강영미
태양은 마른 대지 위의 무엇이든 태워버릴 것 같이 이글거린다- 강영미

 

전태일과 삼동회회원들은 1113, ‘근로기준법은 노동자들의 인권을 보호하지 못하는 무능한 법임을 고발하는 뜻에서 근로기준법 화형식을 갖기로 결의했다. 결행일은 1113일이었다. 그는 이때 이번만은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결단코 물러서지 말고 싸우자.”라고 힘주어 말했다.

이 결단을 두고 얼마나 많은 시간을 망설이고 괴로와했던가 - 백인석
이 결단을 두고 얼마나 많은 시간을 망설이고 괴로와했던가 - 백인석

 

1113, 평화시장 일대는 경찰들이 삼엄하게 진을 치고 있었고 업주들은 종업원에게 오늘 행사에 절대 가담해서는 안 된다.”라고 주의를 내렸다. 삼동회 회원들은 평화시장 앞에서 노동환경 개선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그러나 업주와 경찰 들이 현수막을 빼앗는 등 시위를 진압하려 하자 전태일은 온몸에 석유를 끼얹고 불을 붙였다. 그리고 근로기준법을 지켜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등의 구호를 외치며 평화시장 앞을 달렸다.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 손종만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 손종만

 

뒤늦게 도착한 기자들이 취재를 시작했다. 3분가량 전태일의 몸이 불탔다. 근처에 있던 사람들은 뜻밖의 상황에 당황해 불을 끌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이 소식을 듣고 공장의 수많은 노동자들이 달려 나와 시위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전태일은 병원으로 이송되었으나 이렇다 할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자신이 못다 이룬 일을 어머니가 이루어 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스물두 살의 나이로 숨을 거두었다. 전태일의 죽음은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고 지금도 노동자들의 정신에 큰 영향을 주고 있다.

- 전태일에 대해 윤재운, 장희흥 집필 함

- 기사 편집 김태희

 

전태일을 준비하며- 26

인간의 권리를 귀담아 듣지 않는 세상을 향해 꽃다운 청년이 목숨을 바쳤다. 지금 사는 세상은 그때보다 얼마나 달라졌는가. 오늘 우리가 전태일이 되어 세상을 향해 붓을 들었다. 강민숙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라고 외치며 스물세살의 꽃다운 청춘을 근로기준법 화형식으로 승화시킨 전태일 열사는 숨을 거두기 직전에도 어머니에게 "배가 고프다……"는 말을 남겼다고 합니다. 웅크러든 그 삶을 무거운 두 다리로 항거해야 했던 투쟁의 의미를 되새겨봅니다. 강영미

인간답게 살아가야 하는 삶의 길이 얼마나 소중하며, 귀중함을 느끼게 되며, 사람답게 살아가는 데에 어떠한 불의에는 함께 시정하려고 노력해야 된다는 것을… 〔김광철

전태일은 유서를 쓰면서 살아남을 사람들을 향해 자신을 '그대들 전체의 일부인 나' 라고 칭하며, 그대들이 바로 전태일이라고 말해주는 듯 합니다. 김미화

지금 우리가 사는 편안하고 행복한 세상은 누군가의 희생으로 만들어진 것이 틀림없다 생각합니다. 전태일 열사가 매일 했던 다짐 속에 사실은 두려움이 있었던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안타까웠습니다. 오늘날, 그를 작게나마 기릴 수 있어 감사한 시간이었습니다. 김수연

인간이 자원이라는 이름의 도구로 판단되어 진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인적자원이라는 말에는, 감정이 있고, 행복을 추구하는 인간이 우선시되어야 할 것이다. 김수경

사람들은 그를 자신의 몸을 불살라 노동자들의 인권을 지키고자했던 전태일 열사로 기억하지만, 그의 일기 속에서 열아홉 태일은 금희 누나를 사모하는 마음에 잠도 못자는 평범한 청년이었다는 사실이 가슴 아팠습니다. 김정혜

청년 열사는 그 사회 노동자 전체의 얼굴로써 행복도 아닌 마지막 인간다운 삶을 찾아 보려 자신의 몸을 바쳐 우리에게 고백하고 있다. 우리는 어떻게 평화를 이루어 가고 무엇으로 빛이 되려는가! 남영범

저에게는 전태일처럼 스스로 불꽃이 된 한사람이 있었습니다. 절대 어떤 죽음도 헛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전태일처럼 살 수 있을까요? 아니 나는, 전태일이 고통당한 만큼, 그 한 사람이 고통당했던 만큼, 아플 수 있을까요? 류지정

전태일 수기에서 열사의 '사업계획서'를 보게 되었어요. 얼마나 간절했으면 그토록 어린 태일이 스스로 사업계획서를 작성했을까. 심지어 사업계획서의 마지막은 '나의 전부를 여기에 바치겠다'로 끝나고 결국 태일은 전부를 바쳤지요. 박나은

평화시장의 열악한 환경 속에서 열사가 희망했던 재단사의 꿈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50년 지난 오늘 노동 환경은 변화되었는가? 열사의 바램은 완성되었는가? 먹을 가득 머금은 붓은 강하게 묻고 있었다. 깨진 벼루석으로 열사의 꿈을 그리고, 벌어졌던 틈을 메우고 기워서 완성하는 일이 우리의 몫이리라. 박철

가을의 시린 고독을 맡아본 사람은 알리라! 벗어날 수 없는 절망의 시간 속에 수 없이 겪었을 참혹함을, 너무도 사랑하여 죽음을 선택할 수 밖에 없는 결단의 순간을, 이젠 알리라! 무참했던 한국 사회의 노동 현실을 일깨운 기적은 그가 겪은 고독의 총합이었음을. 박행화

흔들리고, 망설이고, 결단하고…… 하루에도 수백 수천번 반복했을 그 흔들림 후에 찾아온, 모든 것을 내려놓은 담담함을 표현하고자 했다. 백인석

20여년전에 보았던 영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이 생각났다. 그 제목을 쓸 능력은 못되고 정성을 다해서 그리기로 했다. 그리는 내내 열사의 정신과 삶이 내게로 와 떨림과 설렘이 계속 되었다. 지금도 그렇다. 손종만

청소년 시절 전태일의 책을 읽고 큰 충격을 받은 채 마음 깊이 묻어둔 열사의 삶을 붓으로 다시 쓰게 되어 영광입니다. 송정선

지극히 단순한 마음으로 페이지를 연다. 단숨에 읽힌다. 읽는다. 가슴이 먹먹해진다. 미안하고 또 미안하고 미안하다. '기쁨과 사랑을 나눌 수 있어서 행복했다던' 체육대회날의 고등학생 태일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리다. 아프지마요! 우진영

두려움을 떨치고 의연한 모습으로 주먹을 굳게 쥐었을 전태일이 떠오릅니다. 힘들었을 싸움, 장렬한 스무살 청년의 죽음. 지금 이 순간 힘든 여정을 겪고 있을 또 다른 전태일을 위해 응원합니다. 윤은화

그도 역시 두려웠을 겁니다. 그렇지만 그는 모든 나를 위해, 나를 아주 영원히 버림으로써 결국은 영원히 살아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전태일입니다. 내가 바로 전태일이라는 마음으로, 그가 살았던 시대와 크게 달라지지 않은 노동 현실을 외면하지 않으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이미지

힘겹게 하루 하루를 버티며 살고 있던 전태일은 모든것을 놓아 버리고 싶었을 만큼의 육체적 고통으로 인해서 어린 나이의 그에게 죽음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할 정도로 정신적으로 피폐하게 만든 것이 가슴 아팠다. 이현정

어떤 소회를 밝힐 수 있으랴. 여전히 열악한 노동자의 팍팍한 삶의 현실. 그저 먹먹한 가슴으로 답답한 숨막힘으로 한 줄 글씨의 힘이 누군가를 움직이게 할 수 있다는 것. 역사의 바퀴는 그렇게 굴러간다는 깨우침으로 부끄러운 붓을 들었습니다. 정진호

전태일의 일기를 읽으면서 어린 시절 우거지를 주워 김치를 담그셨던 어머니의 모습이 떠올라 태일이의 마음이 내 마음같아 글을 연습하는 내내 태일이와 내가 함께 글을 썼습니다. 조성숙

모두를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버릴 정도로 모두를 사랑했던 진정 아름다운 청년. 고달픈 노동 환경의 연속에서도 그는 하루하루를 견디고 살아야 했다. 그 안에서 그가 스스로 어떤 다짐을 해야만 했는 지, 어떤 희망을 떠올려야만 했는 지 조금은 엿볼 수 있었다. 조원명

청년 전태일이 봉제공 노동자들을 위하여 분신의 결단을 내리고 하느님께 기도하며 끝까지 불쌍한 동료들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실 것을 간절히 염원하는 아름답고 용감한 청년의 모습을 그려보며 글씨로 담아 보았습니다. 최근국

학교에 다녔던 기간이 2년도 채 안되었지만 평생 배움을 갈구했던 전태일. 배움은 '하루하루 나를 위해 존재 하는 순간'이며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라했던 스무살의 전태일을 통해 배움이 나를 위해 존재하는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최우령

인간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투쟁하는 그의 외로운 뒷모습이 떠오릅니다. 착취 당하는 어린 동심에게 한 조각의 빵과 물을 쥐어 주기 위해 자신을 태워야만 했던 전태일을 기억합니다. 추연이

사람의 글을 옮기는 작업은 보여지는 것보다 쓰는 사람에게 더 큰 울림을 준다고 여겨진다. 붓을 드는 매 순간 전태일의 삶을 보게 되고 그가 희망했던 사회는 지금도 우리 모두가 가야 할 길 임을 새기는 기회였습니다. 한미숙

아름다운청년 전태일기념관  서울특별시 종로구 관수동 152-1

[공지]   전태일기념관 임시 휴관 안내   (8/19~별도 공지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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