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명일기] 코로나 시대, 중년 아재들이 ‘수제’로 직접 살아가는 행복
[광명일기] 코로나 시대, 중년 아재들이 ‘수제’로 직접 살아가는 행복
  • 윤보리 기자
  • 승인 2020.10.30 17: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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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는 오십을 천명을 알 수 있는 나이, 지천명(知天命)이라 했지만, 대부분 중년들 아재들에게는 개뿔 같은 소리다. 여전히 인생은 알 수 없고, 고민은 많고, 이미 자란 아이들은 제 갈 길을 가기에 외로움마저 몰려드는 시기다. 일체유심조(一體唯心造). 어둔 면을 보면 한 없이 어두워지지만, 밝은 면을 보자면 한 없이 밝아지기도 한다. 인생 오십은 가족에서 벗어나 남자들은 새로운 자유를 찾을 수 있는 시기다.

광명에서 이 남자들이 모인 것은 배드민턴 클럽에서다. 가장 빠른 속도를 가진 운동인 배드민턴이 끝나면 막걸리와 맥주로 갈증과 허기를 채우곤 했는데, 우리 나라에서 안타까운 것 중의 하나는 서민들이 먹는 술 중에 괜찮은 술이 없다는 것다. 싼 게 비지떡이라고, 천 원짜리 소주와 서울막걸리에 무엇을 기대하랴 마는 점점 까탈스러워지는 입맛에 중년 남자들은 술을 한번 담아서 제대로 먹어보자는 생각을 술 김에 했다. 텃밭도 가꿔서 직접 요리도 해보고 제대로 된 막걸리를 담아서, 나에게 술 한 잔 사주지 않는 인생을 안주삼아 먹어보자는 야심찬 결의를 한 밤에 했다.

첫 번째 프로젝트는 부의주. 쌀알이 동동 뜨는 막걸리다. 전통주 전국대회에서 우승 경력이 있는 젊은 강사를 모시고 전통주의 기초부터 배웠다. 50대들의  유년 시절인 유신 시대에는 시골 마을에서, 집에서 술 담그는 것을 금지했다. 미국에서 공짜에 가까운 원조 밀가루를 가져오던 시기니, 양조장에서 수입밀가루로 만든 술을 사먹으라는 거다. 그래도 어려운 살림에 한 푼이라도 아끼려는 여인들과 수입밀가루와는 비교할 수 없는 쌀막걸리의 맛을 즐겨하던 남정네들은 합심해 곧잘 집에서 술을 빚고, 어린 아이들은 아랫묵의 술냄새에 취해갔다.

술 빚는 냄새를 맡은 단속반원들이 들이닥치면 남정네들은 술독을 들고 산으로 올라가고, 여인들은 볏집가리로 숨기곤 했다. 70년대 유신독재시절, 웃지 못할 풍경이었다. 그렇게 국가는 금지하고 시장은 맛없는 싼 술을 내놓으면서, 집집마다 여인들의 술빚는 솜씨들은 줄어갔고, 남정네들은 밀가루 막걸리에 익숙해져 갔다.

강사가 미리 재료를 준비해 준 덕분에 고두밥과 누룩과 술을 골고루 잘 섞기만 하면 된다. 어렵게 생각했는데 간단하다. 문제는 찹쌀로 고두밥찌기. 유년 시절, 어머니가 고두밥을 쪄서 식힐 때 옆에서 주워 먹던 기억이 새롭다. 고두밥찌기의 과제는 다음으로 미루고 3주 동안 잘 숙성시키고, 깨끗이 짜서, 잘 마셔주기만 하면 된다. 쌀과 누룩과 물만으로 만들어진다는 것이 신기하다. 장수막걸리 포장지를 보니 들어가는 감미료, 첨가물이 눈에 들어온다. 

부의주, 간단하지만 좋은 맛을 만들기는 힘든 술
부의주, 간단하지만 좋은 맛을 만들기는 힘든 술

전통주의 미덕은 걸러서 오래 숙성시키면 시킬수록 깊은 맛이 난다는 것이다. 공장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열흘 넘기지 못하고 맛이 변해가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아마도 들어가는 것이 적고, 화학제품이 아니라서 맛이 깊어지는 모양이다.

8월에는 수제맥주에 도전했다. 가게에서 수제맥주라고 하는 것이 오백 한 잔에 만원에 육박해 보통의 주당들에게 부담스런 금액이다. 수제맥주 만드는 것도 의외로 간단한다. 보리를 적당히 싹을 틔운 맥아와 맥주맛을 내는 홉, 효모와 물만 있으면 된다. 맥주의 색깔은 맥아를 얼마 정도로 볶는지에 달려 있다. 강원도 출신 중년 아재는 자기 동네에서 홉을 키운 이야기를 열심히 한다. 하지만 그를 제외한 나머지는 홉을 본적이 없다.  예전에 홉은 유럽에서만 재배되는 작물이어서 우리나라에서는 맥주를 못 만드는 줄 알았다.

맥주의 풍미를 만드는 홉, 의외로 본 사람은 드물다
맥주의 풍미를 만드는 홉, 의외로 본 사람은 드물다

강사가 전처리를 해가지고 왔기에 재료들을 잘 섞고 맥주병에 넣기만 하면 된다. 500cc 흑맥주 3병, 라거맥주 3병이 나왔다. 먹지 않아도 보는 것만으로 뿌듯함의 취기가 올라온다. 이것도 3주 동안 잘 숙성시키면 된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깊은 맛이 나온다고 했지만, 한달 보름을 넘기지 못하고 모두 사라졌다는 후문이다. 오랜만에 만난 30대 독립여성 처조카가 맛이 자기 취향이라며 간곡한 뜻을 보이길래 두병을 주면서 그 동안의 수고를 공치사 했다.

수제맥주, 의외로 만들기가 간단하다. 반재료를 구입해서 잘 숙성시켜주는 것이 중요하다
수제맥주, 의외로 만들기가 간단하다. 반재료를 구입해서 잘 숙성시켜주는 것이 중요하다

다음은 텃밭요리 만들기 프로젝트! 요리라고는 별로 해본 경험이 없는 중년 아재들의 현직 조리사의 지도를 받아가며 오이소박이를 만들었다. 대형마트에서 1개 천원하는 오이가 산지와 직거래 한다는 가게에서는 무려 5개에 천원이다. 상태가 더 좋은 데도 말이다. 알 수 없는 농산물 가격을 뒤로 하면서 남자들은 열심히 오이를 씻고, 자르고, 부추를 넣어 오이소박이를 넣었다. 싼 맛에 많이 산 덕분인지 허리가 아프고, 오금이 저려온다.  집에서도 잘 만들어 먹지 않는 요즘 시절이지만, 여인들의 노고가 다시 느껴진다. 한통씩 오이소박이를 들고 간 남정네들은 간만에 예쁨을 받았다는 뒷담화가 들린다.

10월의 프로젝트는 석탄주. 처음에 이름을 듣고는 색깔 탓이려니 했는데, 이야기를 듣고 보니 ‘애석할 석, 삼킬 탄’ 삼키기가 안타까울 만큼 향기가 좋다는 술이다. 똑같은 동동주 재료가 들어가지만 이양주, 두 번에 걸쳐 만들기에 향기가 깊어진다고 한다. 아직 술은 익고 있고, 단풍이 절정에 오를 때 마실 수 있을 듯 하다.

중년 남자들은 11월에 김장과 한번의 막걸리 학교를 남겨두고 있다. 8월 말에 씨 한톨 뿌렸을 뿐인데, 무는 팔뚝만큼이나 커졌다.  ‘씨앗의 힘은 세다’. 도대체 눈에 잘 보이지 않을 듯한 조그만 씨앗 하나가 무슨 힘으로 수 천 배 수 만 배로 제 몸을 키웠을까?  생명의 힘은 대단하다. 우리의 생명력은 얼마나 될까?  힘차게 자라는 무 앞에 겸손해진다.

코로나 블루의 시대, 시대는 갑갑하고 마음은 우울하다. 중년아재들이 이 우울증을 조금이나마 해소하려면 살고 있는 동네에서 체면과 격식을 벗어 던지고, 슬리퍼 끌고 다니면서 괜찮은 벗들과 맛난 술, 맛난 안주를 함께 만들어서 같이 즐기는 것도 해볼만한 일이다. 물 건너온 말로 '로컬택트'라고 한다. 영화 ‘웰컴투 동막골’의 이장님 말처럼, 마을리더십의 출발은 맛난 것을 함께 배불리 먹는 일에서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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