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이야기] 거금도 백발 약초 할머니
[섬이야기] 거금도 백발 약초 할머니
  • 강제윤(사단법인 섬연구소 소장, 섬 순례자)
  • 승인 2021.01.29 22: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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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금도 청석 부근, 비탈 밭에 백발의 할머니 한분 작은 곡괭이로 땅을 파고 계시다. '시오'라는 약초를 캐는 중이다.

할머니가 약초 뿌리를 캐다  말려놓고 전화를 하면 수집상이 찾아와 사간다.

"혼자 오셨소. "

"예 혼자 왔어요. 할머니."

"어디서 오셨소?"

"서울서 왔습니다."

"서울서 혼자 오셨구만이라우. 버스타고 오셨구만이라우. 동무랑 같이 오지 그랬소. 우리 머시마 새끼도 서울 사는디 사람들 데리고 등산하러 온답디다. 감나무에 감이라도 익었으면 자시라 할텐데 아직 안익었소."

할머니는 안타까운 듯 밭 가장자리 감나무를 올려다보면서도 곡괭이질을 멈추지 않는다. 거금도는 산이 좋아 등산객들이 많이 찾는다.

서울 사는 할머니 아들도 자주 친구들을 데리고 등산을 오곤 한다. 오랫동안 가물었다. 땅이 말라 땅을 파기가 쉽지 않다. 할머니는 작은 약초 뿌리 하나 캐기 위해 몇 번의 곡괭이질을 해야 한다.

"어치케 비가 안오고 깡깡한지."

 

전남 고흥군 금산면 거금도. 거금도의 옛이름은 절이도 정상에 서면 서쪽으로 완도, 남쪽으로 거문도, 동쪽으로 여수 일원의 바다와 섬들이 한눈에 들어오고 날씨가 좋은 날은 멀리 제주도가 바라보인다 할 정도로 전망이 좋다.

 

할머니는 건너 섬 시산도가 고향이다.

"내 안투 고향은 시산이요. 거이가 친정부락이요. 안 올 디를 와갖고 험한 시상 다 넘기고, 서른 시살 막둥이도 죽어 빌고, 팔십서이나 됐는디."

"속상하시겠어요. 할머니."

"시월 보내고 살지 어차겄소."

 

몇 년 전 늦둥이 작은아들은 사고로 죽고 큰아들은 50이 넘었는데도 여전히 어렵게 살아간다.

"답답하요. 큰놈은 장사하지 마라 해도 장사해갔고 밑천도 없이 장사한다고 해갔고 손해만 보고." 83세 어미는 여전히 큰아들을 돕는다.

"돈 주는 가이나가 불쌍해 죽겄다고 하요."

그 사정을 잘 아는 면사무소 여직원이 생활보조금을 드리면서 할머니가 불쌍해 탄식을 한다는 말씀이다. 큰아들은 외지로 떠돌았지만 작은아들은 고향에서 가정을 꾸려 성실하게 살았었다. 그런데 느닷없는 사고를 당해 세상을 떴다.

"막둥이는 마흔네 살에 낳는디, 손주 모양 낳는디, 사람 노릇할까 했는디 가버렸소."

막내아들은 못 배웠지만 "대학 나온 여자"를 만나 결혼해서 아이 낳고 행복하게 살았다. 포클레인 운전을 했으니 돈벌이도 괜찮았다하지만 몇 해 전 어느 날 포클레인 작업을 나갔다가 점심 먹고 쉬던 중 흙이 매몰되어 깔려 죽었다. 흙을 파보니 피우던 담배가 그대로 손에 꽂혀 있었다. 숨 막혀 죽은 작은 아들을 생각하면 할머니는 억장이 무너진다.

청상이 된 며느리가 혼자 어린 손자를 키우고 있으니 그 또한 못 본 체 할 수 없다. 할머니는 다 쓰러져 가는 오두막에 살면서 어렵게 돈을 모았다.

생활보호대상자로 지원되는 20여만 원과 노령 연금을 한 푼도 쓰지 않았다. 거기에 약초를 캐서 판 돈을 합하니 지난 설 때는 2백만 원이 모였다.

며느리한테 백만 원, 큰아들한테 백만 원을 줬다. 추석 때는 얼마 모으지 못했다. 며느리랑 큰아들한테 50만원 씩 밖에 못 준 것이 못내 짠하고 아쉽다.

 

할머니의 전 재산이라 해봐야 다 쓰러져 가는 오두막과 이 조막만한 밭 한 뙈기가 전부다. 사람을 사서 밭을 갈아야 하는데 돈 들어가는 것이 겁나 쟁기질도 못한다. 할머니 혼자 괭이로 "깡깡한" 땅을 파서 "마늘도 심기고 호박이랑 고추도 조금씩 심겨 먹고" 근근히 입에 풀칠이나 하며 사신다.

시집온 뒤부터 영감은 내내 속만 썩이다 환갑에 죽었다.

"쌀 갖고 다니면서 술이나 묵고. 밭곡식 갖고 다님서 술 묵고. 일찍이 잘 갔지."

딸은 셋. 딸 하나는 의문의 사고로 죽었지만 범인은 잡히지 않았다. 사위가 범인으로 의심됐지만 수사는 유야무야 끝나고 말았다. 딸 둘은 "못 갈쳐서" 어렵게들 살아간다.

"오래 사는 게 큰 일이오. 그게 고생이지라우. 막둥이 그것만 안 죽었어도 숨 쉬고 묵을 것 묵고 살텐디. 남자 잘못 만나고 고생을 타고 나서 얼릉 안죽는다께. 남자 복 못 보께 자식복도 못 보제. 남자 나무랄 것도 없지라우. 원망할 필요 없지라우. 내가 안 올디 와갖고 그런거제."

 

할머니는 자신의 불행이 남 탓이 아니라 자기 탓이라 여기신다.

할머니는 잠시 곡괭이질을 멈추시더니 방울토마토 몇 개를 따서 나그네에게 건네 주신다.

"이거라도 자시오."

갈라 터지고 살점 하나 없이 앙상한 손. 그토록 신산한 삶을 사셨고 지금도 고역을 벗어나지 못하고 사시지만 한없이 넉넉하고 따뜻하다.

할머니가 흙 묻은 손으로 따주신 방울토마토를 베어 먹으니 눈물이 왈칵 쏟아진다. 나그네는 할머니의 삶을 듣는 것만으로도 고통스러운데

할머니는 먼데서 찾아온 나그네에게 뭐라도 먹을 것을 더 주지 못하는 것이 미안하고 안쓰럽기만 하다. 대체 사람의 정이란 무엇일까.

가진 것 없어도 나누려는 마음. 정이야말로 정의다.

 

거금도 바다에 저녁이 깃든다
저녁이 깃든 거금도 바다 물결

 

거금도 앞바다에 저녁이 깃들기 시작한다. 마침 웬 사내 하나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중이다. 사내는 저 혼자 구성진 노래를 부르며 길을 걷는다.

할머니가 이름을 불러도 듣지 못하고 그저 제 흥에 겨워 가던 길을 간다.

"자가 맨날 저리 노래하고 다녀. 불러도 못 듣고."

사내는 청각 장애인이다. 노을 지는 거금도 하늘 위로 사내의 노랫가락이 구슬프게 울려 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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