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개벽 102주년을 맞이하여
3·1개벽 102주년을 맞이하여
  • 김봉준(화가)
  • 승인 2021.03.02 20: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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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절 백주년에는 광화문에 나가서 축제 디자이너로 참여하느라 1, 2월 내내 바빴었다. ‘백주년기념문화제준비자나 참가자들은 모두 그렇게 진지하고 헌신적일 수가 없었다. 그야말로 대동세상을 광화문에서 본 듯 하였다.

우리 민족의 숨은 저력을 또 다시 느낀 그날이었다. 우리 민족은 위기에 강하고 큰 뜻에 하나가 되는 저력을 가끔씩 느끼는 순간들이 있어서 살맛이 난다. 이런 맛이 없으면 벌써 조국을 떠났을 지도 모른다. 이 숨은 저력의 문화는 어디서 오는가? 오늘 파고다에서 3·1절 행사 중에 나온 말씀은 다 동감하고 여기선 문화로 말해보고 싶다. 숨은 저력의 문화란 무엇이란 말인가.

 

 

그림 김봉준화백  '3·1아리랑’ 유화 50호 2003년 작
그림 김봉준화백 '3·1아리랑’ 유화 50호

 

 

나는 이것을 가장 잘 드러내고 있는 것이 아리랑이라고 본다. ‘아리랑의 기원에 대해선 여러 설이 있지만 여기선 그 점 논외로 하고 아리랑아리랑노랫말과 춤에 대해서 보자. 아리랑고개는 시련과 고난을 상징한다. 이걸 극복하려는 님을 부르는 자를 주목하자. 님을 부르는 자는 일반적으로 낭군과 행복한 살림을 치르려던 여인이다. 이 여인이 님을 부르는 노래가 아리랑인 것이다.

가족의 행복마저 못 갖는 아픔에 절규하기보다 떠나는 님이 발병나서 얼마 못가고 돌아오라는 입담이 더 애절하고 해학적으로 들린다. 자신의 슬픔조차 웃으며 날려버리는 '고난의 초월'  이런 미학이 어디서 부터 나오는가. 애절하나 비탄에 빠지지 않는 감성에서 끝까지 삶을 포기하지 않는 긍정의 미학을 본다. 민족의 숨은 저력은 고난의 초월이 다시 삶으로 거듭나는 것에 있었다. 위기를 또 다른 기회로 만드는 숨은 저력이 아리랑노래에 잘 보인다.

 

3·1절만 되면 괜히 그 시절 만백성 만세소리가 들리는 듯하고 만세 부르다가 일경에 쫓겨서 아리랑고개를 넘는 님이 생각나고, 그래도 살아남아서 잘 살아보려고 비록 지금 페르조나 사회적 가면을 쓰고 있지만 그 속 마음은 님과 함께 아리랑 세상 살고싶다는 님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나는 10년 전 이 고난과 희망 사이에서 만세를 외치던 우리 조상들을 그리고 싶었다 50호 캔버스에 유화로 그렸다. 청년기 탈춤 추고 풍물 치던 그늘진 신명을 무의식적으로 그렸다. 묘사하는 그림이 아니고 즉흥적으로 그린 것이다. 페르조나에 잡힌 그늘과 떨치려는 신명의 이중적 교호가 이런 그림이 되어 버렸다. 10년 전 그림이 재작년 3·1절 백주년 기념 포스타가 될 줄 몰랐네.

 

오늘 다시 3·1절을 맞아 역사를 직시하게 된다. '아리랑'은 님 부르는 여심이었다. 삶을 지극히 긍정하고 올곧게 모시고자 했던 조선 여인의 세계관은 오늘도 숨은 저력의 ’  문화로 우리 민족의 원형문화로 흐르고 있다. ‘이란 무엇인가?

사랑도 우정도 아니어서 서양 언어로 번역이 안되는 것, 살면서 점점 더 느끼게 되는 잊지 못할 애련, 미운정 고운정 다 품는 애틋한 마음, 혈연 간과 이웃 간의 공동체 삶이 형성해 낸 관계적 문화양식, 오랜 씨족공동체로부터 형성된 넓은 품의 모계문화이다. ‘’, 그 신성한 힘을 느끼게 하는 살림문화의 진수가 아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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