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여행, 속(俗)에서 성(聖)으로 가는 산책
마을여행, 속(俗)에서 성(聖)으로 가는 산책
  • 마을여행팀
  • 승인 2021.08.06 17:4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난 사월, 우연히 만났다. 인연이라면 다들 지난 10년 전에 서울에서 마을공동체를 만들자는 다소 거창한 뜻에 공감하면서 몇 년 ‘어공’ 비슷한 생활을 한 게 인연의 전부라면 전부였다. 초창기에 갈 길은 잘 보이지 않았고, 좌충우돌하면서 몇 해를 보냈다. 모든 것이 화폐와 자본으로 환원하는 시대에, 평균 5년에 한번 씩은 이사를 해야 하는 자본과 욕망의 최첨단 도시인 서울에서 마을과 공동체를 만들어보겠다는 것은 다소 황당한 시도였다. 하지만, 부초 같은 서울살이를 허망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터라 되든 안되든 뭐라도 시도는 해봐야겠다는 생각으로 인연을 맺었다.

기획하지 않은 기획

몇 해의 시간이 지나면서 약간은 자리도 잡히고, 후배들도 들어오면서 일선에서 물러났지만,종로에서 약간의 끈적끈적한 인연이 있었기에 마을대학이라는 것을 실험해보고 있었다. 돈도, 뭐도 없이 시작한 일이라 바닥을 헤매고 있었지만, 씨를 뿌리면 그래도 몇 알은 싹을 튀우겠지 하는 마음으로 이런저런 모색도 해보고 실험을 해보는 중이었다.

뜻이 맞는 이들과 계절별로 지역을 다니면서 마을여행을 하고, 풀뿌리 지역언론을 하나 만들어놓으면 이런저런 지역의 자산도 모이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감으로 두 해 째를 운영하고 있었다. 아마도 주민기자 아카데미를 마친 날인 듯 싶다. 코로나 시국에 힘들게 진행한 아카데미의 마감을 자축하면서 북촌의 단골집에서 막걸리를 한 잔씩 하고 있었다.

술이 몇 순배 돌자, 뉴스에는 박원순 시장 실종이라는 속보가 뜨고 우리들은 술안주 삼아 이런저런 농담을 해댔다. 얼큰하게 취한 자정 무렵에 부음이 들려왔고, 순간적으로 노무현, 노회찬 등의 비극이 오버랩 됐다. 아 비정한 정치여! 내용은 알 수 없었으나, 정치가 그를 죽였으리라는 짐작만은 했다. 노무현처럼 비극적이고 장렬한 최후가 아니라, 정체를 알기 힘든 모호한 죽음이었기에 마음은 더욱 어수선했다.

우연히 4명이 연락이 닿아 모였고, 공통의 인연이었던 그 시절을 돌이켜보면서 인연을 맺는데 계기를 주었던 박 시장의 비극에 대해서도 이런 저런 생각을 내놓았다. 그러다 1주기에는 묘지라도 한번 가보자는 약속을 술김에 했고, 동향이라는 이유로 1박2일 가이드 자임을 했다. 술로 인한 여행기획이었다. 술 김에 한 약속이라 술이 깨고, 일이 바빠지면 약속이 깨지지 않을까도 생각했는데 모두들 가보겠다는 결연한 의지는 여름이 돼서도 변하지 않았다. 아마도 그의 죽음에 대해 똥을 싸고도 닦지 못한 듯한, 다들 그런 마음이 없지 않아 있었던 모양이었다.

천 리에 가까운 남행길을 시작했다. 가는 길이야 무더위였지만, 차 안은 시원했다. 아무런 사건 사고도 없이 창녕 초입에 도달하자,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1박 2일 가이드를 자임했던 터라 대략 난감했다. 해가 떠 있는 동안에는 신라 때에 지어졌다는 관룡사로 가서 화왕산까지 트레킹을 하고 읍내에 있는 가야 고분군을 들러볼 생각이었는데 폭우로 모든 것이 틀어졌다. 배도 고프고 해서 늦은 점심과 반주를 마치고 나자, 날은 씻은 듯이 개었다. 그러나 한번 풀어진 마음에 피곤이 몰려오고 우선 숙소로 가서 짐을 풀자는 데에 이구동성. 애당초 기획하지 않은 기획이 핵심이었다.

억년의 고요와 정치의 비극

약간의 술과 안주, 먹을 거리를 준비해서 우포늪 가에 있는 유스호스텔로 향했다. 다들 여름날에 1억 4천년 전에 만들어졌다는 우포늪의 고요를 맛보고 싶은 마음이 강했다. 더욱이 여름날 새벽 물안개가 피어오르고 나룻배가 고기를 잡는 모습은 한 폭의 동양화처럼 아름답다. 다들 이런 저런 일에 치이고 지쳐 고요 속에 휴식을 취하고 싶은 마음이 제일 강했다.

한낮의 폭우가 그치자 오랜만에 뜬 무지개
한낮의 폭우가 그치자 오랜만에 뜬 무지개

한 차례 폭우가 지나간 시골의 여름밤은 끈적끈적하면서 고즈넉했다. 오랜만에 맛보는 시골의 여름밤이었다. 우포의 생태를 고려한 유스호스텔은 한옥으로 지었고, 코로나 때문인지 인적은 한산했다. 몇 잔의 술에 취한 우리는 10년 전의 지나간 시간을 이야기하고, 비명에 간 이를 추억하고, 마음 여린 이는 눈시울을 적시었다. 그렇게 밤은 깊어 갔고, 일상의 피곤에 찌든 이들은 우포의 새벽은 커녕 해가 중천에 뜨고서야 겨우 일어날 수 있었다.

그래도 1억 4천 전의 정취를 보지 않을 수는 없어 자전거로 주마간산을 했다. 지난 폭우에 우포의 물은 불어 있었고, 나는 강변에 사는 이들의 비극적 생활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주었다. 우기가 되면 낙동강에는 큰 물이 꼭 한 두번씩 몰려왔고, 큰 물이 지고 난 뒤면 아무것도 남지 않고 오직 퀘퀘한 냄새만이 남던 유년시절의 기억이 큰 물을 보자 다시 떠올랐다. 이 우포늪 자리에 있는 마을들도 큰 물 때문에 꽤나 고생을 했을 것이다. 날은 무더웠고, 간밤의 숙취는 여전히 물러가지 않았다.

억년의 신비와 고요를 느끼게 해주는 우포늪
억년의 신비와 고요를 느끼게 해주는 우포늪

라면으로 간단한 해장을 하고 박 시장의 묘지로 향했다. 가는 길에 보기 힘든 큰 한옥촌이 나타났다. ‘창녕성씨고가’ 한 대가족의 집이란다. 서울에서 조그만한 공간에서 지지고 볶으며 살다, 수 천 평에 자리잡은 고가를 보자 약간의 회한이 밀려온다. 무슨 영광을 보자고, 이런저런 발길에 치이는 복잡한 서울을 떠나지 못한고 있는지! 떠나야 할 때 떠나고, 돌아가야 할 때 돌아가는 것이 제대로 된 진보가 아닐까!

박 시장의 고향은 퇴락한 여느 시골과 비슷한 마을이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당시 서울에서도 명문이었던 경기고에 입학하고, 사법고시에 합격하고 서울시장까지 한 박원순은 동네 사람에게는 영웅이었을 게다. 그런 기대를 한 몸에 받던 이가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하자, 한적한 시골 동네 사람들의 마음 또한 복잡다단했을 게다. 대통령보다야 못하지만, 그래도 이 땅에서 권력 2인자라고도 할 수도 있는 서울시장을 냈다는 자부심이 약간은 비극적으로 끝났으니!

고 박원순 시장의 묘지
고 박원순 시장의 묘지

묘지로 가는 길은 멀었다. 삼복더위의 강한 빛을 온 몸으로 받으며 동네 뒷산길로 30여 분을 걸어가서야 묘지가 보였다. 코로나로 공식행사야 취소가 되었지만, 그래도 오는 손님들을 위해 약간의 천막과 군청에서 나온 듯한 안내원들이 보였다. 부모님 밑에 놓인 그의 묘지는 나즈막 했다. 그의 부모 봉분은 그래도 번듯해 보였지만, 그의 묘지는 낮고 겸손했다. 낮은 봉분이 좋았다. 시민을 중심에 두고 살아보고자 했던, 그의 정신이 일부라도 보이는 듯 했다. 다들 술을 한 잔 따르고 비극적 생을 마친 이에 대한 추념을 했다. 좋은 세상을 만든다는 것이 무엇일까? 가능하기는 할까? 좋은 세상을 만들어보려다 스스로 생을 마감한 노무현, 노회찬, 박원순에 대한 마지막 생각이 궁금했다. 그들은 스스로 목숨을 던지겠다고 결심하고, 마지막 순간에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이번 창녕여행에 대한 나름의 화두는 ‘마지막 생각’이었다. 그 현장에라도 가봐야 그 마지막 생각을 미루어 짐작이라도 해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유장하게 흐르는 낙동강
유장하게 흐르는 낙동강

마지막 생각을 뒤로 하고 낙동강변으로 향했다. 시골집을 가면 항상 하는 강변 절벽의 산책길이다. 남의 집으로 팔려갔던 개가 주인집으로 찾아왔다는 개비랑길. ‘개가 다닌 벼랑길’의 경상도식 축약이다. 개가 한 마리 다닐 만한 좁은 길이었지만, 입소문이 나면서 조금은 넓어졌다. 청춘시절부터 즐겨 다니는 길이었다. 가끔 절벽 위에서 소용돌이 치는 강물을 보면 무섭다는 생각과, 뛰어들고 싶다는 생각이 복합적으로 들던 곳이다. 무엇보다 강변의 시원한 바람이 좋다. 대나무숲도 제대로 만들어져서 강바람에 흔들리는 대숲소리가 세상의 번뇌를 잠시나마 씻어주는 듯 하다.

개비리길의 대숲
개비리길의 대숲

도시내기들이 강바람에 대숲 소리가 좋은지 떠나질 않는다. 한참을 말없이 쉬다가 돌아왔다. 뒤에 들으니 박시장의 묘지에서 들었던 우울하고 복잡했던 감정이 그나마 강바람에 대나무 소리를 들으면서 조금 치유가 됐다는 전언이다. 시골집으로 향했다. 여든을 훌쩍 넘겼지만, 돌아가신 이들의 제사는 습관처럼 챙기는 당신이다.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되련만, 습관 때문인지, 당신도 멀지 않았다는 것을 생각 때문인지 삼복더위에 몰려 있는 제사에 식구가 없어도 이젠 친구가 된 늙은 고모들과 제사만은 꼬박꼬박 지낸다. 어제 밤이 시조모 제사였다며, 제사밥을 내온다. 다들 우연치고는 묘한 인연이라며 각종 나물로 채워진 제사밥을 박시장의 그것 인냥 먹었다. 그렇게 경상도식 제사밥을 먹으며 죽은 이들을 생각하며, 산 자들은 지친 영혼도 치료했다. 여행의 백미는 끼니를 훌쩍 넘기고 우연히 먹은 제사밥이었다.

마을여행, 새로운 빛을 찾아가는 여정

여행이 아름다운 것은 세속(俗)에서 성스러움(聖)으로 순간이나마 이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실은 어디에 있든 비루하고, 사람들 사이의 관계는 버겁다. 세속의 비루함과 버거움으로 벗어날 수만 있으면 가는 곳이 어디든 그것은 여행이다. 여행은 물 밖의 먼 곳으로 가든지, 이웃한 마을로 가든지 본질적으로 비슷하다. ‘지금, 여기’의 복잡다단함에서 떠날 수 있다면 그것은 여행이고, 새로운 빛을 보는 과정(觀光)이다. 그런 점에서 공통의 기억을 가지고, 같은 미래의 꿈을 안고 떠나는 여행이야말로 정수라고 할 수 있다.

낯설면 낯설수록 여행의 긴장과 스릴은 높아지겠지만, 마음의 치유를 목적으로 한다면 뜻 맞는 이들과 가까운 마을의 속살을 들여다보는 여행으로도 충분하다. 아직 이 땅에는 마을을 지키는 강호의 고수들이 많고, 자본이 미처 상품화하지 못한 훌륭한 공간이 많다. 10년 전 박원순은 시골 마을에서 보낸 유년 시절의 시간이 있었기에, 나이를 먹을수록 그 시절이 그리워졌으므로 서울에서도 마을을 만들어보자는 꿈을 꾸지 않았을까? 그 꿈 때문에 만났고, 여전히 곳곳에서 마을은 다양한 색채로 진행 중이다. 어쩌면 마을여행은 그 꿈을 뒤돌아보고, 새롭게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조만간 국가가 아닌 마을공화국을 꿈꾸는 이들과 전국 곳곳을 누비는 마을여행을 생각해봐야 겠다.

 

[마을여행학교 준비위원 모집] 코로나 시국에 여행이라는 말은 꺼내기 힘든 단어가 되어버렸지만, 올 하반기에 국민 대다수가 백신을 맞고 나면 내년에는 다시 말을 꺼낼 수는 있겠지요^^ 전국민회에서 마을대학 설립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미 35개 지역에서 마을대학 설립에 참여와 출자약정을 해주셨고, 지역과 주제별로 다양한 내용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마을여행학교도 그 중의 하나입니다. 마을여행학교는 지역에 있는 역사, 문화, 자연, 사람 등 다양한 자원들을 엮어서 여행 프로그램 개발과 운영을 목적으로 합니다. 준비하고 배워야 할 것은 많겠지만, 마을대학이 잘할 수 있는 부분 중의 하나가 아닐까 합니다. 먹고, 마시고, 노는 것 중심의 기존의 관광이 아니라, 지역의 특성에 따라 보다 다양하고 의미있는 모색과 기획이 가능하리라 봅니다. 올해 하반기에는 마을과 지역여행에 뜻이 있는 분들과 함께 우선 함께 학습하고, 준비하고, 기획하는 시간을 가지려고 합니다. 살고 있는 곳을 중심으로 마을여행 프로그램 개발과 운영에 뜻이 있는 분들을 모십니다. 

마을대학 마을여행학교 준비위원 참여 신청 : https://forms.gle/XbDRG7NUe5d1uoYf7
(마을여행학교 준비팀 010-7328-0624)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